아이자크와 크게 싸운 적은 손에 꼽았다. 아이자크는 내 말을 잘 따라주고 의견도 존중해주는 좋은 친구로 나와 말다툼을 시작으로 해서 주먹질까지 하게 되는 일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것도 남들이 보면 시시한 수준의 싸움일지 모르겠다. 그 손에 꼽은 것들도 대부분이 죄다 레지먼트 시절의 것으로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다른 기억들이 죄다 열화 되었다하더라도 그것만큼은 꼭 기억하고 있었다.
"에바, 네가 미끼가 될 필요는 없대도!"
3일간의 모의훈련동안 꾸준히 들어온 말이었다. 다만 한 귀로 듣지도 않고 다른 귀로 흘려버린 것을 아이자크는 용케 알았는지 같이 그라운드를 달리면서 집요하게 말을 걸어왔다.
"필요한 수라면 나도 말이 되어야지. 이미 나는 체스 판의 병사야."
"좀 더 자기 목숨을 소중히 하지 그래. 에바는 몰입하면 항상 도가 지나치게 나아가는 버릇이 있다고."
이건 한번은 제대로 말하고 넘어가야겠다 싶어서 내 생각을 조곤조곤 말해주었다. 아이자크도 이쯤하면 납득하겠지 했는데 질렸다는 목소리로 잘도 다음 말을 뱉는 것이다.
"그러다가 죽어도 아무 미련 없다고?"
이 시점에서 나는 화가 났다. 발로 차는 지면에서 모래가 일었다. 하지만 참기로 했다. 아이자크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겠지. 아아,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화낼 이유는 없었다.
"네 세계는 이 좁은 레지먼트에 한정된거니까 괴물따위에게 의미없이 찢겨 나가 죽어도 좋다고?"
그건 명백한 시비였다.
도발이었고, 나를 무척이나 화가 나게 하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이자크가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가.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자신을 제어하지 못 하고 내 자신이 뱉은 말은 생각없는 말이었다.
"아아, 그러니까 나도 너도 죽으면 되겠지. 그런 요량으로 한 말이지, 아이자크?"
주먹이 날아왔다. 아니, 그 앞전에 본 아이자크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이 '이 녀석 이런 표정도 짓던가.' 싶을 정도로 섬뜩한 것이어서 주먹을 피할 수가 없었다. 묵직하게 군살 박힌 사내의 주먹이 뺨을 내리 꽂았다. 안경으로 날아오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물론 안경이라고 무사히 코 위에 걸쳐져 있지는 못하고 지면으로 날아갔다.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쟤네 왜 저래? 몰라, 말려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다음으론 씩씩 거리는 아이자크의 흥분한 숨소리가 뇌를 차갑게 만들어, 주었어야 하는 것을. 생각보다 몸이 앞서는 일은 자주 없었다. 가열된 머리가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내 상반신은 크게 비틀렸다가 아이자크의 뺨에 주먹을 내리 꽂았다. 내 주먹이 일순 알싸할 정도였다. 아이자크가 휘청하더니 다시 이쪽을 노려보는 것이다. 어딜, 화가 나서 발길질을 하려는 순간 아이자크가 몸을 날려서 내 등을 지면에 붙였다. 잔잔한 모래에 쓸려 하얀 훈련복이 엉망이 된 것보다 실컷 까인 것 같은 등의 쓰림이 신경 쓰이는 게 당연했다.
기억은 여기까지로, 둘다 엉망이 되고 나서야 교관이 말리러 왔다.
아이자크와는 같은 방을 썼는데, 그러면서도 단 한번도 사과의 말도 사과의 눈초리도 보내지 않았다. 그 때 처음으로 아이자크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참 혐오스러웠는데 그럼에도 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이자크의 물건이 전혀 없는 방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화해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문제는 이후 몇 번인가 이 화제로 아이자크와 싸웠다는 것이다.
아이자크는, 아이자크야말로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해야 한다. 다치고 끝나서 다행이야, 그가 매번 말할 때마다 실로 아슬아슬한 상처가 나 있어서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제국의 검은 군복이 축축하게 자신의 피로 젖어있으면서도 태평하게 임시로 말아두었던 붕대를 풀면서 솜으로 닦아내기를 몇 번인가. 네 상처는 내가 보지. 등을 수건으로 내리찍자, 아악, 는 소리가 절로 나는 모양이었다.
넌 조심성이 없어. 위기감도 없지.
상처부위에 연고를 바르면서 몇 마디인가 잔소리를 하면 아이자크는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뭘 잘 했다고. 꽁, 하고 가볍게 머리를 쥐어박으면 "잘 했지. 살아 돌아왔잖아." 같은 말을 해댔다.
"에바."
차분한 목소리가 숨을 가르고 내 귀를 두드렸다.
"살아남자. 꼭."
"아아……. 당연하지."
숨이 떨렸다. 이후 아이자크와 위의 같은 이유로 싸운 적은 없었다. 아니, 이후 주먹을 내지르며 아이처럼 싸운 기억은 전혀 없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아이자크에게 사과를 해야 할 터인데. 내가 검을 겨누고 있는 상대는 왜 아이자크일까.
내 방에 더이상 네 물건이 놓여있지 않게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것이었다. 대게, 슬픔과 섭섭함을 늘어놓으면서도 너에 대한 내 애정을 담은 말을 해야 할 텐데. 그 말들은 숨을 한번 들이쉬었다 내쉴 때마다 담배연기처럼 공기를 헤집다 뿔뿔이 흩어져 사라졌다. 그럼에도 공기 속에 남아 유해물질이 피부를 파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에바."
대답없이 그를 바라보면, 아니 적을 응시하면, 아이자크는 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울림으로 나를 괴롭혔다.
"너를 좀 더 아껴."
놓칠 뻔한 검을 바로 잡는 동안 감정을 놓쳐 버린 내가 뱉어낸 한심한 말은 뱉어내고 나서야 쓸어 담을 수 없는 담배연기와 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과거는,
너와 내가 겨우 살아남았던 모든 과거는 너와 나의 단 한 번의 죽음에서부터 비롯하여 엇갈려서,
잘라 내지 않으면 내가 숨조차 쉴 수 없는 유해물질로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눈시울마저 따가워지고 코는 숨 쉬기를 거부하면서도 그럴 수가 없어서 입으로 뱉어내면 또 그 연기가 폐까지 달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