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이 지난 뒤, 다른 이들보다 훨씬 빨리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피부에는 또 한 번 'Grunwald'라는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예."
그리고 뛰지 않던 심장이 뛰는 것도 여전했다. 그의 앞이었다. 이름의 주인의 앞이었다. 다소 벅찬 감에 조용히 숨을 몇 번인가 토해내고는 다시 옷을 여미었다.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 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생각했음에도 그는 오히려 담담했다.
"미안하게 됐군."
설마 그의 입에서 사과의 말이 나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였기에 빌헬름은 단추를 잠그던 손을 떨었다. 멍청하게도 '예?' 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긴장된 분위기 속이기 때문이지, 다른 장소였더라면 또 달랐을지도 모른다.
"소령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문신이라도 새겼다고 생각했다."
피부를 찢어놓고는 한다는 사과가 저것이라면 보통은 불쾌하게 들릴 법함에도 빌헬름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군. 있을 법한 일이군.'하고는 납득하고 있었다.
심장이 뛴다는 것은 생소하고도 사랑스러운 사실인 것이다. 의자의 푹신한 팔걸이에 얹은 팔꿈치도, 그리고 얼굴을 받친 손가락도, 향하는 입술도, 눈도, 하나같이 그의 것은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익숙지 않은 감각 따위에 한숨만 나오려는 것을 그의 앞이라 겨우 삼키고는 마저 군복을 추슬렀다.
"도와주도록 하지."
그는 턱을 괴고 있던 팔을 빼고는 그리 말했다.
"소령이 소령 몸에 새겨진 '그룬왈드'라는 사람을 찾는 것을."
길게 대화, 아니 사실 대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일방적이지만 그룬왈드가 이토록 입을 떼는 것을 빌헬름은 처음보았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하나 읽음의 뒷통수를 치는 것 뿐이었고 특히나 방금의 그 말이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당신 말고 누가 이름의 주인입니까? 그리 말하려는 것을 겨우 참고 고개를 올려 그룬왈드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매사에 관심 없는 듯한 그 무표정에서 빌헬름은 어떠한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생각을 고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바싹 마른 입술이 몇 번 시험하듯 움직였다. 무슨 말을 뱉어야할 지 모르는 탓이었다.
"송구합니다, 전하. 제 몸에 새겨진 이름은 전하의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뛰는 심장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 긴장감에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했다. 그는 마치 겁을 먹은 것 같았기에 혹여 그룬왈드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별스런 걱정까지 따라붙는 것이다.
"그런가."
역시 무신경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빌헬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이미 내 이름을 가진 사람과 만난 적이 있다."
차분한 목소리가 냉랭하기까지 했다.
-내겐 네 이름이 없다.
그 사실을 전할 때와 똑같은 위압감이 빌헬름의 심장을 조여들었다. 펌프질하는 심장 탓에 머리까지 치미는 피는 못이라도 박는 것처럼 아프기만 했다.
"내게도 아직 그 자의 이름이 남아있고."
그룬왈드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구두굽이 바닥을 무겁게도 탕탕 쳐댔다. 덕분에 이렇다 할 가구가 없는 이 공간이 울려댔다. 빌헬름의 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승복하지 못하겠다면, 소령에겐 다음 전투에서 내 호위를 맡기지."
그룬왈드는 빌헬름의 옆을 스쳐지나가며 가볍게 어깨를 두드렸다.
선처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 한참이 걸렸다. 그 한참동안 빌헬름은 멍하게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금 심장이 멈출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