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귀가였지만 살가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욕실로 직행해 몸을 씻었다. 샤워기를 끄고 거품을 묻히고 있자면, 거실쪽에서 TV소리가 났다. 늦은 시각인데다, 살가드는 원래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이었다. 소리를 크게 틀어놓는다니 더더욱 그답지 않았다. 유추할 수 있는 건, 아마 그가 자신의 늦은 귀가로 화가 나있다는 것 정도였다. 항상 불만 있어보이는 유려한 얼굴에서 정말 불만을 품고 있는지 알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샤워기를 다시금 틀자 소음인 TV소리는 물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살가드, 화났어요?"
젖은 머리카락도 물기있는 몸도 닦았더니 수건은 더이상 닦아내지 못하고 축축한 채로였다. 목에 대충 걸치고 살가드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소파위에 반쯤 누워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2인용 소파의 중앙자리에 차지하고 앉아있는 탓에 소파 위에 이미 내 자리는 없었다. TV 소리는 본인 귀에도 거슬릴 정도로 크게 올려두고는 정작 자신은 한손에 잡히는 책을 읽고 있었다. 그나마도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는 듯 했다. 내 말에 눈만 흘겨 나와 시선을 마주치다가 곧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아무 말없이 그대로 또 책만 보는 거였다. 한층 누그러진 표정으로 한숨을 폭 뱉어내는 게 있었던 할 말을 집어삼킨 게 분명했다.
허리를 굽혔다. 무릎을 바닥에 닿도록 꿇어 앉았다. 바닥깔개의 감촉은 부드러운 상품이었지만 바닥은 여전히 딱딱했다. 상체를 좀 더 숙이면 얼마전에 날이 추워진 까닭에 급하게 낸 바닥깔개에서 형용하기 힘든 마른 냄새가 났다. 눈 앞에 있는 것을 확인하자면 남자의 발이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것도 아니라 얇은 곡선을 그렸다. 인체에 대해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드러난 것이 힘줄인지 어떤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감히 입술을 대자면 그 발이 나를 피하기 위해 뒤로 빠졌다. 놓칠 수는 없기에 발가락을 아프지 않게 깨물어대면 좋아하는 목소리가 위에서 울렸다.
"뭐하자는 거지."
대답하지 않고 하던 짓을 계속 했다. 가지런한 발톱과 살의 경계를 탐하거나,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의 계곡을 핥아대거나. 복사뼈 주위를 드문드문 깨물고 간간히 발에 난 주름 사이사이를 침으로 적실 생각으로 빨아댔다. 입술을 가져다댄 채로 혀를 내려 쪽쪽거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고 있자니 시끄럽기 그지 없던 TV의 전원이 꺼지는 소리가 대신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