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덕분에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멈춰있던 플라스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플라스틱 재질일리 없는 그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혹시라도 놓친 게 있을까봐, 수십 번은 읽었을 관련서적의 탑이 아래에서부터 무너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남자의 상체가 책상 위로 떨어졌다. 엎드린 채로 우는 소리가 났다.
"이제 싫어요."
울음 속에서 남자는 말을 계속 했다.
남자는 열등생이 아니다. 범재도 아니고, 어느 쪽이냐면 우수한 편이었다. 적성도 제대로 찾아왔고, 밟고 있는 길도 엘리트의 길이었다. 큰 불만은 없었다. 몇 번을 실패해도 웃으며 넘길 수 있었고, 몇 십번을 실패해도 다시 할 의욕을 찾았고, 그렇게 지금까지는 백하고도 몇 번째쯤에는 성과를 얻었다.
C.C.는 그 노력이 존경스러웠다. 하나에 그렇게까지 몰두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타이렐은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건 지금에 와서도 변하지 않는다.
"죽고 싶어요."
어떻게 위로하면 좋을지 몰라 들썩거리는 그 어깨만을 뚫어져 바라보고 있던 C.C가 그 말에 퍼뜩 정신이 들어 타이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등을 잡아 끌어안았다. 타이렐의 배를 팔로 감싸 일으켜 세우듯 허리께까지 에둘렀다. 꼭 껴안아지는 느낌이 나쁘진 않았지만 비참하기는 했다. 풀린 눈으로 작동 중인 기기를 바라보았다. 며칠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어서 눈 아래가 짙은데다가 운 흔적이 그득해서 좋은 꼴을 하고 있지는 못했다.
C.C.는 타이렐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지금은 또 어떨 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타이렐은 C.C.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싫어했고, C.C.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평소 없을 지금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건 타이렐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이 날만 아니었어도 C.C.는 영영 타이렐이 정신이 강한 잘 웃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타이렐이 쉰 목소리로, 진정되지 않아 딸꾹질 마냥 올라오는 울음을 참고 입을 떼었다.
"C.C.는 어때요? 잘, 돼가요?"
뻔했다. C.C.는 잘 되어가고 있을 터였다. 그건 타이렐 자신이 눈으로 한번 확인한 것이고, C.C.의 입으로 한번 더 확인 할 것도 없는 것이었는데, 허탈함에 자조적인 질문을 하고 말았다.
죽고 싶다는 사람 앞에서 솔직하게 말할 정도로 C.C.는 잔인하지 않았다. 타이렐을 안고 있는 팔에 좀 더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