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볕이 드물게 뜨거웠기 때문에 훈련이 일찍 끝났다. 피부가 타는 듯 한 햇살이었다. 나시티만 남기거나, 혹은 상의를 전부 벗어던지고 물장난을 치는 녀석들도 종종 있었다. 물론 얌전하게 방으로 돌아가거나 근처 그늘에서 바람을 쐬는 아이들도 있었고, 에바와 아이자크는 그 일부였다.
물에 푹 적신 수건을 목에 걸치고 병 안의 미지근해진 물을 벌컥벌컥 마셨지만 영 더위가 식질 않았다. 아이자크는 그나마 한 꺼풀 벗었지만, 에바리스트는 아직 남에게 피부를 보이기 싫어하는 도련님다운 면이 남아 더위를 자초하고 있었다. 그리 싫다면 안에 들어가서 쉬면 좋을 것을. 내심 체력이 약하다는 동기의 놀리는 말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나보다. 아이자크는 그런 에바에게 정오의 짧은 그늘을 내어주었다. 물이 떨어져 가벼워진 병을 몇 번인가 흔들고는 포기한 듯 땅에 놓고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푹 숙이는 에바를 보고 아이자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져올게. 쉬고 있어, 에바."
사람을 귀해 보이게 하는 머리카락이나, 그 몸가짐, 그리고 높은 자존심은 이럴 때는 득이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좀 벗는다고 누가 나무라는 것도 아닌데. 이 더위에 에바가 제일 두껍게 입었을걸! ' 식수대에서 받은 물을 자신도 들이키며 아이자크가 고개를 올렸을 때,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어둡고 칙칙해서 갈색에 가까운 그 금발은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유달리 그 존재를 강조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는 아이자크의 눈엔 보이지 않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호남형으로 연령대는 20대 정도로 보였다.
목도 천으로 숨기고, 제복은 흐트러짐 없이 긴 소매를 유지했다. 더군다나 신발은 참 따뜻해 보이는 방한용이었다. 덥지도 않나? 세상엔 별난 사람이 많다. 그리 생각하며 아이자크가 고개를 다시금 숙였을 때 나뭇가지가 날아왔다. 전혀 긴장하지 않은 터라 머리에 그대로 맞았고 아픔에 머리를 쥐어 싸맬 수밖에 없었다.
"아, 아파아..."
"그러기에 누가 노려보라던?"
사내는 어느새 나무 아래로 내려와 대답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는 듯 한마디 던지곤 아이자크를 스쳐지나갔다.
"왜 때려요, 씨이..."
선임이 확실했기 때문에 사내가 지나가고 나서야 한마디 작게 내뱉은 것이 사내의 귀를 찔렀는지, 사내는 급하게 돌아서 아이자크에게로 다시 향했다. 덕분에 놀란 아이자크가 입을 양 손으로 가렸지만 이미 뱉은 말이 도로 들어와 줄 리가 없었다.
"내가 던진 거 봤어?"
"아, 아닙니다!"
사내는 긴장으로 바짝 날이 선 아이자크의 어깨를 잡았다. 잡힐 리가 없는 작은 어깨의 온기가 전해지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기에, 한참 오래 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사내는 이를 꼭 깨물었다 놓으며 다시 한 번 아이자크에게 질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