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룬왈드x빌헬름 으로 네임버스... 설정을 빌렸습니다. 별로 네임버스적인 소재는 없습니다<
병실에 옮겨진 것이야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막상 이렇게 긴 시간동안 병실신세를 져본 적은 없는 터라 빌헬름은 무료함에 초조해져갔다. 무엇보다 군사시설이 아닌 왕실의 부속기관이었다. 무료함에 부담까지 더해지니 죽을 맛이었다. 죽을 리는 없었지만.
그 무료함 정도야 얼마든지 깨주겠다는 듯이, 잠시 후 급함을 느낄 정도로 문이 허겁지겁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을 연 것은 그의 옆에서 잔뜩 긴장한 의사였다. 그는 빌헬름이 이미 예상하고 있던 남자였다. 빌헬름은 몸을 일으켰다. 뜸이라도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환자복으로는 제대로 된 예의를 갖출 수 없었다.
"오셨습니까, 전하."
제가 직접 찾아가도록 허락해주셨으면 좋았을 텝니다. 혹여 건방지게 들릴까 싶어 거기까지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침대의 쇠창살 같은 헤더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대인가."
의사를 포함해 자신을 따라온 간호원과 병사들을 문 안으로 한 발짝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은 그가 천천히 빌헬름에게 다가왔다. 멱살을 잡히듯이 가슴팍의 천을 잡혔다. 그리고는 그로서는 당연한 악력으로 가볍게 환자복을 찢어버린 것이다.
심장이 뛴다. 이미 뛸 수 없었던 게 분명한 심장이 이렇게나 두근두근 뛴다. 죽기 전에는 느낄 생각이 없었기에 느끼지 못한 것이, 그리고 죽어서는 뛰지 않아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온 몸을 꿰뚫었다. 심장이 전신에 피를 공급한다는 역할을 수행하듯, 잊고 있었던 것을 간신히 기억해냈다는 듯이 벅차게 뛰었다.
그룬왈드의 시선이 빌헬름의 심장을 덮고 있는 피부로 향했다. 자신의 이름이 명백히 새겨진 피가 고여 기괴한 멍을 새긴 듯한 그것을 찬찬히 확인한다. 혹여나 틀린 스펠링이라도 있을까 트집을 잡기 위해 천천히.
Grunwald.
괘씸했다.
허리에 차고 있던 검으로 사정없이 그 피부를 찢었다. 울컥하고 검은 피가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고여 있었던 것이 죄다 떨어지자 빨간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병실 밖에서 여간호원이 소리를 지를 뻔한 것을 누군가가 틀어막았는지 그 이외에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내겐 네 이름이 없다. 쿠르트 소령."
벅찬 숨을 고르며 빌헬름이 상처를 부여잡았다.
"회복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이야기는 그 피부가 아물고도 다시금 그 이름이 떠올랐을 때 하도록 하지."
그룬왈드는 병실 밖을 나섰다. 심장이 박동을 다시금 멈춘다. 아, 역시 그다. 지난 몇 년을 감추고 산 것을 어이없는 곳에서 들켜 그의 귀에 오르게 되었지만. 덕분에 확인할 수 있었다. 빌헬름은 아픔을 동반하면서도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으로 심장을 도려지면 죽을 수는 있겠구나.
당장 죽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언제의 언젠가. 정말 죽고 싶을 때가 찾아왔을 때, 그룬왈드에게 심장을 찢겨져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해가 저물어 병실에서 다시금 눈을 떴을 때 빌헬름은 천천히 생각했다.
그에게 자신의 이름이 있을 리가 없다. 그룬왈드는 자신을 죽일 수 있지만, 자신은 그에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는 것이다. 이 이름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적부터 줄곧 생각해온 이 무거운 이름의 의미는 아마도 그런 것이기 때문에.
사족
+그룬왈드가 빌헬름을 괘씸하다고 느낀 이유는 이전에 자신과 이름을 마주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