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야를 한 다음 비는 시간을 이용해서 취하는 수면은 그야말로 달콤하다. 인체에야 밤에 자는 잠이 안식을 취하기에 딱이라지만 이따금 낮이 안겨다주는 밝고 따스함도 나쁘지 않았다. 타이렐은 자신의 개인 연구실이 마음에 들었다. 푹신한 침대가 있는 수면실을 마다하고 아직 자료들이 어지럽게 놓여진 책상 위에 팔을 꼬아 베개를 만들었다. 먼지내가 조금 날지도 모르지만 장시간 잠들지 못한 터라 마비된 코는 섬유에서 나는 지극히 미묘한 향을 잡아내기를 포기했고 덕분에 자신의 온기만 포근히 느껴져 좋았다. 잠들기 전에 미리 꿈을 꾸는 듯한 붕 뜨는 감각. 나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플래시가 터지듯 몇 번인가 색색의 불빛이 눈꺼풀아래로 빙빙 돌았다. 색조불빛을 너무 많이 본 탓인가. 다음 멘테때까지 시력을 아껴두지 않으면 눈에도 헛짓거리를 당하려나. 그런 생각을 했다. 창문에서 굳이 들어오겠다는 햇빛을 막지 않는 하얀 천의 커텐은 아마도 이제 슬슬 세탁해두지 않으면 연구실 전체가 지저분한 인상을 면하지 못할테지. 다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을만큼 햇빛이 포근했다.
타이렐은 잠에 빠졌다.
복도를 걸어 타이렐의 연구실 앞까지 걸어오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조차도 위기감 없는 신체는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그대로 공기를 통해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살가드는 문을 두드렸다. 아직 타이렐의 근무시간이었다. 오늘 아침에야 타이렐이 올린 보고서에 관한 보고서가 들어왔으니 그는 새벽 내도록 보고서를 정리하고 오전 내내 남은 것들을 정리하느라 힘을 가뜩 썼을 테였다. 그의 페이스가 느렸거나 게으름 따위가 아니라 예의 갑작스런 일정의 변경이었다. 어제까지야 살가드 본인도 바빴으니 야근 명령을 받은 타이렐의 표정을 상상할 겨를도 없었다. 하여간 빨리도 보고서를 작성해준 기특한 부하에게 오늘은 돌아가서 푹 쉬어도 좋다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 복도를 천천히 걸어 그의 연구실 까지 와서 문을 두드린 것이다.
답이 없었다.
또 예의 그 귀마개를 끼고 있을 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저 몰두하는 것이 있어서 못 들었거나. 혹은…. 조심스레 손잡이를 먼저 돌리고 문을 밀었다.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흰색 천의 커텐이 살짝 열어둔 창문으로부터 방안을 감히 침투하는 바람에 여인의 치마폭 흔들리듯 나부끼고 있었다. 좀 더 아래로 시선을 떨구면 익숙한 색으로, 햇빛에 다소 반짝이는 엷은 색의 머리카락이 조용히 숨을 내쉬고 있었다.
더욱 발소리를 죽여 가까이 다가가면 커텐소리에 묻힌 그의 숨소리까지 들렸다.
기특한 부하는 알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깨워서 굳이 돌려보낼 이유는 없었다. 조심스레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려 매끄러운 이마로부터 살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넘기듯 쓰다듬어보았다.
"후."
이 과정에서 뭘 그리 긴장했는지. 살가드는 용무가 더이상 남지 않은 연구실을 빠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