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미술실에서 무언가를 그리고 있자, 누군가가 아오바에게 말을 걸어왔다. 누구더라…….
익숙한 얼굴이니까 미술부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아오바는, "네? 정말인가요?"하고 익숙하게 연기한다.
"응……! 쿠로누마군의 색채, 단조로우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달까…….여기저기 이어져 있는 느낌이예요.색과 색이 유대감을 가진 듯한! 마치 쿠로누마군의 순수하고 순진한 마음처럼요!"
아오바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는다. 이 바보는 뭐지. 그리고보니, 미술가가 그럴싸하게 점 하나 찍으면 평론가가 백만가지의 의미를 부여한댔지. 하지만 저 사람, 임팩트있는 평론은 하지 못하니까 평론가로써의 자질 없는 것같네. 평범한 바다그림을 보고 야하다고 말해줄 정도라면 몰라. 그나저나, 순수하다는 말은 둘째치고 고교생에게 순진하단 말은 칭찬이 아니란 걸 모르는 거야?
"그래요? 거기까지 들으면 부끄러워요."
쑥스러운 연기를 하며 붓을 캔버스에 걸쳐놓고 앞치마를 대충 테이블 위에 걸친다. 원래는 좀 더 있을 생각이였지만, 입을 열게 되면 그림에 집중할 수없게 된다. 정리를 하고 '그 곳'으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오바는 부실 내에 있는 세면기에서 손을 씻는다.
"쿠로누마군은 바다를 좋아하나봐요." "아, 아뇨."
제게 있어서 바다는…….
*
"수고하셨습니다!"
아오바가 미카도에게 밝고 기합들어간 작별인사를 한다.
"아오바군이 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
아, 물론 모두 열심히 했어! 하고 급하게 정정같은 첨부를 하는 미카도를 보며 아오바는 웃는다. 기분 좋게.
"아, 아오바군. 저기 잠깐만……." "네?" "묻고 싶은게 있는데 괜찮아? 사적인 일 같아서……."
네, 괜찮아요. 아는 한 열심히 대답할게요. 그렇게 말하자 미카도는 반가운 화색을 띄며 질문한다.
"다들 이야기 중에 야츠후사……라는 사람에 대해 가끔 언급하는데, 누구……? 출석인원은 아닌 것같아서. 에, 음, 물어보니까 아오바군에게 물어보라고들 해서……."
"네, 괜찮아요. 야츠후사는요……."
상어들의 시선이 아오바를 향한다. 말하지 말라고, 그들은 큰 소리로 떠들며 눈치를 준다. 아니,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오바를 달래는 듯했다. 이 정도, 괜찮은데, 라고 말하 듯이 아오바는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어 미카도에게 답한다.
"초창기 멤버 같은 느낌이죠. 몸이 안 좋지만요. 저랑요? 꽤 많이 친했어요. 몸이 약했다는 거 빼고는 여기있는 애들과 똑같으니까요. 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질이 나쁘죠!"
"아오바! 지금 때릴 거 참아주니까 험담이냐! S.H.I.N.E.!" "엇, 긴. 질리지도 않고 또 그거야? 그 네타 마음에 든거지? 아니면 나에 대한 애정? 아! 그리고보니 험담이란거 어떻게 알았어?"
바사사하고 웃어보이면서 아오바가 받아친다. 그리고 한참동안 주고받기를 하고서 제법 시간이 지난 걸 깨달은 아오바가 하하하 그럼 안녕, 다음에 봐- 하고는 손을 흔들며 폐공장을 나간다. 제법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본다. 답지않게 별구경이라도 할 생각은 아니지만 보고 있자면 확실히 하루가 지났다는 뿌듯함과 묘하게 가슴이 시원히 뚫리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과거를 돌이키기 보다는 미래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그 미래조차도 과거를 향하고 있다면 어떤걸까.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어라, 그럼 현재가 존재하기는 한 걸까? 하고 묘하게도 철학적인 질문으로 넘어갈 때즈음, 아오바는 사고를 관두며 저녁의 거리를 스쳐지나 밟아 돌아간다.
야츠후사. 친우의 이름을 되뇌이며 아오바는 아무도 모르게 감상에 젖어든다.
*
"바다는 싫어요." "엣?"
생긋생긋 웃으면서 아오바는 붓정리를 하고, 가방을 챙긴다. 귀가 준비다.
"그치만, 지금 그리고 있는 바다, 굉장히 광활하고 멋진데……."
"음……. 이런거예요. 바다가 아니면 살 수없는 생물은 많죠? 그런, 거예요. 바다를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날 수가 없죠. 육지를 알고 싶어요. 정확히는 육지의 한 가운데에서 무언갈 찾고 싶은거지만요. 하지만 바다를 벗어나면 죽어버리니까, 바다가 육지를 삼킬 때까지 돕는 거예요. 아, 육지엔 바다를 오염하는 존재들이 많죠? 그걸 배제하는 게 돕는 거랄까요. 아, 덧붙여서 적조현상이 일어나도 곤란하죠. 여하튼 육지를 알게 되는 목적을 달할 때까지, 바다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거죠."
뭐 이리 조잘거렸담, 나답지 않게. 알 수 없는 말을 조잘조잘 거리는 건 그 남자의 특기고, 그 입을 후려쳐서라도 다물게 하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오바는 이런 저런 연상끝에 후회하면서 상대에게 사과한다.
"잘 모르겠지만……. 바다가 육지를 삼키면 그건 이미 육지가 아니라……."
"그땐 바다가 말라버리길 바라야죠. 아니, 마르지않으면 곤란하네요."
스슬 귀찮아진 아오바가 빨리 나가려고 교복을 단정히 하고 가방을 손에 잡는다. 대화를 끊고 싶다는 눈치가 눈에 안 보이는 걸까, 제 멋대로인 사람이네. 잠깐 동안의 정적이 일자, 아 이때다 싶은 아오바가 발을 떼어 문 쪽으로 가까이 가자 뭔가 생각을 끝낸 듯한 상대쪽에서 분위기를 잡고 말한다.
"죽잖아요……?"
안타까운 눈을 하고 자신의 바보같은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공감,동정하는 이름도 모르는 미술부원을 아오바는 내심 비웃기 시작한다. 그래요, 죽겠죠. 수분이 다 증발해서 점점 지쳐가서 말라 비틀어 죽겠죠. 그런데 그게 댁과 무슨 상관이예요. 입이 근질근질하게 말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아낸다.
"육지 한 가운데서 죽는 상어! ……가 되고 싶진 않네요. 뭐, 죽는 리스크를 겸하더라도 육지 한 가운데에서 만나야 할 존재가 있어서요."
또 조잘거려버렸다. 이런 이야기 열심히 듣다니, 이상한 사람이야.
"굉장하네요, 그 존재는……. 신인가요?"
"……."
아오바의 눈이 일순 동그랗게 커진다. 놀란 걸까? 본인은 자신이 놀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말로 놀랄 리는 없다. 흥분? 어디에서 감정의 고조를 느낀거지. 신? 신은 아닌데. 그런 바보같은 대사 좋아하지 않고……. 상대를 등지고 들리지 않게 후, 하고 한숨을 내뱉는다. 그렇게 금방 진정을 되찾는다. 덜컹하고 가라앉았던 심장이, 아오바의 의지로 덜걱덜걱, 억지로 펌프질을 한다.
"네."
돌아보지도 않고, 부실의 문 손잡이에 손을 얹는다.
"제…… 죄에 댓가를 치르라고 말하는 잔혹한 신이지만요. 제 유일한 신."
"쿠로누마군……."
대화해보니까, 의외예요 하는 눈으로 아오바를 바라보는 상대. 이런 중2적 사고의 어디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걸까, 하고 아오바는 상대의 감수성에 감탄해본다. 말처럼 쉽게 감탄할 수 없었다.
"만나길 바라요, 그 신!"
아오바는, "네. 잠그길 바라요, 부실 문!"라고 대답하고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간다.
안 쪽에서 '아!'하고 뒤늦게 깨닫는 소리가 난다. 바보 맞구나?
어서 빨리 선배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으면. 요즘들어 계속 지각지각지각이네. 이러다가 쿠데타가 일어나면 어쩐담. 재미없는 이야기네……. 아오바가 발을 빨리 움직인다. 그러다 문득 덜떨어진 미술부원으로 부터 마지막으로 들은 인사가 떠올라서 참을 틈도 없이 '픽'하고 웃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