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쿠치 선배!"
반쯤 불안한 마음으로 그의 성을 부르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는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알고 있는 그 선배가 맞다. 쿠쿠치 헤이스케(久々知 兵助) 선배.
길거리에서 이야기 나누기에는 주변이 시끄럽다를 핑계삼아, 선배와 이른 점심을 같이 어울리기로 하며, 무엇을 먹을 지 결정하다, "역시 두부로 할까요?"하고 묻고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부, 이제 싫어하시는 거예요?"
미미하게 웃음을 지어보이는 선배. 그 웃음이 나를 향한 웃음인지, 씁쓸한 웃음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선배는 표정을 바꾸며 이야기를 해나갔다.
사람의 두부가 으깨지는 걸 보니까, 그게 마치 먹는 으깨진 두부처럼 보이더라고.
선배는 모종의 일로 사람의 머리가 박살나는 것을 보고서는 두부를 입에 전혀 담지 못하게 되었다라는 듯했다.그렇게 좋아하는 음식이셨는데. 하하, 그러게 인생사 새옹지마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지금 쓰는 말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럴려나…
쿠쿠치 선배는 일하던 닌자대에서 손을 떼고, 지금은 자유롭게 여기저기 생각나는 대로, 발이 원하고, 손이 가르키는 곳따라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정갈하게 식사를 마치는 선배의 손동작을 지켜본다. 여전히 품위있다, 아니 어쩌면 이전보다 더 품위있을 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웠어, 이스케. 또 만나자."
그렇게 말하며 팔을 올려 흔들어보이는 선배의 손은 이전보다 한참은 거칠어 보였다.
상쾌한 재회를 뒤로하고, 원래 목적이였던 쇼자에몽의 숯가게에 들리자, 오랜만에 산지로와 토라카와의 얼굴을 볼 수있었다. 어서와, 이스케. 오랜만이야. 하고 바닥을 통통치는 산지로. 할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였다. 토라카와는 이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쪽의 영주가 죽었다나봐."
근처 성의 성주의 이름은 아니였다. 산지로와 토라카와는 꽤 먼 곳에서 일하고 와서인지 그 쪽의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사실 우리로는 흥미거리정도 밖에 되지않는 이야기였다. 정보는 되지 못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경청한다.
"그래서 그 젊은 영주가 올라간거야?"
킨고는 그 지역의 이야기를 겉핥기식으로 들은 모양이였다. 토라카와와 산지로는 킨고를 위해서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열심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한참 후 까지 계속되는 이야기에 킨고를 슬쩍 바라보자, 킨고는 듣다 지친 모양이였다.
"머리자체가 으깨져서, 알아볼 수없는 정도였대."
가끔있지, 그런 시체. 원한이라도 많이 샀나. 하고 헤이다유가 심드렁하게 말한다.
"그 지역사람들이 쉬쉬하는 이야기야. 길지나가다 들었는데 요괴의 짓이라고 하더라고."
토라카와가 덧붙인 말에 산지로가 숨넘어가듯 웃으면서 말했다.
"요괴! 얼굴이라도 없는 요괴인가?"
물론 다른 아이들은 웃지 않았다. 아, 아니다. 헤이다유는 산지로와 함께 웃었다. 킨고는 조금 불편한 듯, 정좌상태를 유지했다.
이윽고, 쇼자에몽이 가게문을 닫고 키리마루를 데려오며 화제가 전환되었다.
*
전쟁준비를 하고 있는 성주의 이름 앞은 오랠 구久 두번에, 알 지知.였다. 옛 친우의 얼굴을 떠올리며 풋하고 웃어넘겼다. 사실은 그가 영주님의 아들!, 하고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다. 아들을 강하게 키울 것이라면 차라리 가신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 아드님이 배워야 할 것은 살아남는 법이나 ,물건으로써 움직이는 법이 아니라 명예로이 살고, 죽더라도 아름답게 죽는 방법이다. 이러저러 생각하지만, 사실 무엇보다 성주와 그 귀한 외동아드님과는 마주친 적도 없다. 단기고용인, 내가 언제 배신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성 소속의 닌자대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될 때, 나는 놀람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그 기쁨을 그 장소에서 쏟아붓진 않았고, 부을 수도 없었다. 소수정예로 조를 구성해서 소임무를 행할 때서야 나는 겨우 애타게 부르고 싶었던 친우의 이름을 슬근히 뱉을 수 있었다.
"헤이스케…!"
그러나 친우는 대답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마치 자신이 '쿠쿠치 헤이스케'가 아니란 듯이. 혹시 사람을 잘 못알았나, 걱정할 정도로 그는 꼼짝도 하지않았다.
의아하게 여겼지만, 그가 괘씸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왜일까, 어째서일까. 나는 그는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고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의아점을 풀어준 것은 이 닌자대의 대장이였다. 그는 친절하게도 '쿠쿠치 헤이스케'라는 이름은 없다라고 멍청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확고하게 말했다. 부를 일이 있다면, 부대장이라고 부르도록. 자세한 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치사한 양반이였다.
아니, 아마도 치사한 건 그 '부대장' 쪽이다.
부대장은 6년지기 친우를 잊지 않았었고, 비번날에 나를 불러 술이라도 마실까…, 권해왔다.
보름달이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다. 술잔에 술을 부어 달에게 권하자, 오히려 달이 자신을 권해온다.
"뭐하는 거야, 하치자에몽."
"감상적이 되어서, 시라도 지어볼까하고."
봐, 내 이름도 잊지않고 부르는 주제에, 어디 내가 네 이름을 부르니까 모른 체하는 거냐. 권해진 달을 사양치 않고 입으로 흘려보낸다. 우리 둘, 주거니 받거니, 시끄럽게 그때를 회상하거나 또는 말없이 스스로 술잔을 채우면서 취기에 홀린다. 국양선생이 너무하다.
"어이."
부를 것이 없으니, 시비조로 말을 걸게 된다. 이름대신 시비조로 말을 걸자, 그가 고개를 돌린다.
"난 널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음……."
여름철이였다면 벌레 울음소리가 울렸을 정적이 찾아온다. 한동안 대답이 없길래, 농담으로라도 이 정적을 깨볼까하자, 그가 일부러 소리를 내려는 듯 술병을 높이 들고 술잔에 따른다. 그리고 마시기 전에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하기 위해서 입을 연다.
"그들이 없을 땐, 헤이스케라고 불러. 쿠쿠치는 빼고."
쿠쿠치…….쿠쿠치……. 성주의 이름 앞, 역시 久々知……. 몰랐던 것이 아니라 반쯤 외면하고 있었던 진실이 왈칵 가슴으로 느껴지니 안쓰럽기만 하다.
"네 이야기, 해볼래?"
"들어준다면."
꿀꺽하고 목으로 술을 넘긴 헤이스케가 '후' 하는 소리를 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던 이야기였다. 역시나 무거웠다.
현 영주의 아들이름은 兵元. 1년 뒤에 태어난 자신이 형과 너무나도 똑같았기 때문에, 이 길을 걷고 있다며. 차라리 여자로 태어났었더라면, 닌자는 되지않았겠지. 너와도 만나지 않았을 거야. 하고 애써 가볍게 이야기하려 한다. 누군가 자신을 동정하는 걸 싫어할테니, 나는 헤이스케를 동정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이야기를 듣는다.
1살밖에 차이나지 않으니, 냉정하고도 현명하신 영주님께서는 동생쪽을 아들으로는 버리되, 패로 쓰기로 했다.
"그 다음은 뻔하지 뭐, 그림자가 되는 거야. 그림자가 된 건 내 의지가 아니지만, 뭐, 인술학원에 가기로 한 건 내 의지야."
성안에서 일생을 얼굴없이, 가장 구석에서 우울하게 보낼 바에야, 차라리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되자 싶어서 인술학원에 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의 생떼였던 거 같아. 하고 후후 , 웃어보인다. 눈꼬리가 기분좋게 휘지만, 그는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이름이 없어서, 곤란했어."
명단을 올리기 위해서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적으려고 종이를 받았는데. 처음부터 막막하더라고. '名: ' 어떻게 채워야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형의 이름에서 한 글자만 바꿔서 적었지. 그러니까, 내 이름은……. 형의 이름, 아니 그냥 아류일까?
언제였을까. 2학년? 3학년? 좀 더 어렸을까, 그러면 1학년? 하급생시절, 사부로와 헤이스케가 처음 인사하던 날을 떠올린다. 얄궂게도 한참 변장을 즐기고 다녔던 사부로가 헤이스케의 얼굴로 한 질문을 떠올린다.
'처음보는데, 이름이?'
그 당시, 우리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헤이스케의 모습을 떠올린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목소리가 와들와들 떨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다리도 떨고 있었을 지 모른다
. '쿠…쿠치, 헤이스케…예요……."
이 과거와 방금의 이야기를 끼워맞추면, 닮았다고 하는 형의 모습이라도 떠올린 걸까. 믿음직스럽지 못한 내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그 때의 사부로는 키가 컸었다.
"하치자에몽."
내 무릎을 툭툭 두드리며 그가 자신의 술잔을 내 앞으로 뻗는다.
"가득 따라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아니, 이번엔 이야기가 아니라 푸념이였다. 죽일 기회. 얼마든지 있었어. 측근들 입만 다물게 하면, 내가 형의 대신이 되어도 아무도 몰랐을 지도 몰라. 아버지, 영주님은 아들을 제대로 기억할 만큼 가정적이진 않았거든. 뭐, 가족보다 영민들이 더 중요했을 거야. 좋은 영주님이지. 아버지로는… 어떨까?
"왜, 죽이지 않았어?"
죽이길 부추기는 건 아니다. 기회가 있었다는 말은 옅보고 있었단 소리다, 기회를. 그는 무슨 연유에서 인지, 아니 어느 의미에서는 죽여마땅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사람의 마음이야, 하고 짐작할 수 없는 이유로 그의 형을 죽이려고 칼을 갈고 있었다. 가족에게 별로 연연하지 않는 듯한 헤이스케의 모습에서, 그리고 그가 닌자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그들이 측은해서…라는 이유는 아닌 것 같았지만,
"불쌍했어."
뜻밖이였다.
"흐흥, 이상해?"
그래, 이상해. 너무 마시는 거 아니냐고 딴지를 걸자, 내 술잔 가득 술을 붓는다. 그럼 너도 너무 마셔라.
"그럼, 계속 이대로 이름없는 그림자냐, 넌."
"이름없는 그림자? 하치자에몽, 시와 여자와 술만 있으면 되는 한심한 사람이야?"
"오늘은 감상적인 기분이야. 그리고, 너 지금 당장 문인들에게 사과해."
여전히 자기주관적인 말을 하는 헤이스케. 그리고보니 언제인지, 헤이스케가 당연하다는 듯이 '…없으면 편하지않아?'라는 말을 했을 때가 떠오른다. 그래, 너는……. 너를 속박하는 그들 때문에 너를 잃었을테니까.
"달이 밝아서, 마치 나를 내려다 보는 것 같아. …음……. 그리고, 너에겐 폐를 끼칠 수 없으니까. 스슬 돌아가자. 밤이 깊어지면, 요괴가 나온다구?"
나보다 훨씬 감상적인 헤이스케가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울려줘서, 고마워. 계산은 내가 할게. 분명 우리 둘 중 누군가 그 말을 했었던 건 기억나는데…….
그 이후, 기억이 없는 걸 봐서는, 꽤 취해있었던 것 같다.
*
그래, 그 이후! 다음 날 지갑에게 평안하냐고 물어보자, 가지고 있던 근심이 없어서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내게 말하듯, 꽤 비어있었다.
아아, 월 초에야 급료가 지불되지 않던가.
오늘, 나는 비번이였지만 헤이스케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다. 편히 쉬는 것은 좋지만, 하루종일 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것도 이 젊은 인생에 미안해져서 마을을 돌아다니기로 결정했다. 이곳은 활력있는 영토다. 곧 전쟁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이런 활기가 계속되는 걸로 보아, 쿠쿠치라는 영주는 헤이스케가 말한 대로 영주로써는 좋은 사람인 듯했다. 분명 그 아드님도 좋은 분이 되겠지.
"앗,"
"타케야 선배!"
오오, 누구냐. 이런 거리에서, 나에게 존칭을 붙여 반가운 듯 나를 부르는 사람은.
"음, 그러니까…유메사키랑, …토…라카와?"
"왜 저는 성이예요."
"순간 기억 못하셨죠? 실망인데요."
반갑지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떠올리는 후배들의 이름과, 기억과 꽤나 일치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으로 인한 착오, 그리고 그 착오에 의해 쪼임당하는 지금, '아,하하하.'하고 웃어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다. 너네는 내가 보지 않는 동안 성장기를 지났으니까 내가 기억하기 어렵다고. 사부로가 히코시로와 쇼자에몽은 기억해도, 히코시로and 쇼자에몽 성장ver를 보고 곧장 '쇼자에몽,히코시로! 오랜만이야. 많이 컸네. 응? 아니야, 난 후와 라이조!…하하, 거짓말이야!'할 수 있을 리가… 아, 아니다. 그녀석이라면 알아볼지도 몰라. 무서운 녀석. 정정, 헤이스케가 이스케는 기억해도, 이스케를 알아보지는 못할 거 아냐!
보라고, 나는 너희들을 꽤나 기억하고 있다고.
"제 이름 기억하시죠?"
"무, 물론이야."
"뭘까요?"
"지,지로?"
"…산지로예요!"
미안미안, 사과를 한다. 정말로 미안하다. 저쪽에서 먼저 알아봐주었으니까. 산지로도 내 속사정을 모르는 건 아닌지 "뭐, 괜찮아요~." 하고 넘어가주는 걸 보니, 이 녀석들도 꽤나 어른이 된 모양이다. 아니, 그 때와 비교하면 안되겠지.
"선배, 바쁘세요? 점심 이미 드셨어요?"
한가하고, 먹지도 않은 점심이기 때문에 둘과 함께 어울리기로 한다.
산지로와 토라카와는 이 근처에서 활동한다고 한다. 단기고용으로. 토라카와의 경우, 원래 한 곳에 머물려고 했지만 아직은 좀 더 많은 걸 보고 싶고……. 또 자신이 쇼세이씨─누구였지? 기억이 날 듯 말듯하다.만큼 훌륭한 저격수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토라카와 우수하죠. 화약냄새가 몸에 배일 정도로 열심이라니까요?"
곧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요! 그걸 조사하는 임무예요. 시간이 많아서 곤란해요. 전쟁치르는 당사자도 아니면서요. 뭐 저희야, 가벼운 휴가 즐기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만요. 빠듯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아마 저희쪽 고용주는 닌자를 처음 고용해보는 게 아닐까요?저희같은 초짜에게 맡기다니. 너희는 초짜도 아니고, 프로지 않냐, 하고 칭찬하자, 산지로가 해맑게 웃는다. 그나저나, 여기는 정말 활력있는 곳이네요. 마치 전쟁준비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착실히 하고 있다고, 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그렇네…, 난 온지 얼마되지도 않고 관심이 없어서, 일어나는 줄도 몰랐어. 정말인지, 나는 닌자로서 실격이네." 하고 거짓말해버린다.
산지로의 그나저나에 비해서 훨씬 사소하면서 막중한 문제인 나의 그나저나, 큰일이야. 지갑이 근심걱정고초, 하나없이 해탈해버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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