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 패러렐
…….
한밤 중, 강한 요기를 느껴 그곳을 향해달려갔을 때, 이미 마을은 초토화였다. 짓밟힌 지붕, 불타는 마을, 고등어타는 냄새-그러니까 시체가 타는 냄새-, 흩날리는 재.
꽤나 큰 마을이였는데 고작 몇 시간만에 사라지다니. 느낀 요기라고 해봐야, 거대하다고는 하지만 하나 뿐이였는데……!
사르르, 하고 지붕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애앵, 애앵하고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평온한 얼굴로 그 아기를 안고 다독다독 거리며 불타는 마을을 나온다.
저것이 화근이리라, 아마 상대하기 버거운 요괴겠지. 이 정도 힘과 파괴력, 당해내기 힘들 것이다.
남자의 앞길을 막아서자, 그제야 내 존재를 눈치챈 건지 고개를 든다.
"야마부시씨? 아아, 수고해요. 지금이라면 아마 한 사람 정도는 구할 수있지않을까? 한 사람."
한 사람, 이라고 말하며 나를 가르킨다. 젠장, 모조리 죽였다는 건가!
"별로 관계없는 사람 죽이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응……. 그런 표정 짓지마, 이 아이가 울잖아?"
남자가 입은 기모노가 팔랑거린다.
나는 발도자세를 취하고, 그를 노려본다. 일순이라도 움직임을 보지 못한다면 끝이다. 상대의 기량으로 보아 나같은 건 한 방에 끝일지도 몰라. 허나, 남자는 지금 아이를 안고 있다. 한쪽팔은 쓸 수가 없어.
남자가 안고 있는 아이가 또 다시 '아아앙' 하고 울기시작한다. "아아, 이 애도 참 어리광쟁이라니까……."
남자가 시선을 내린 그 순간, 남자를 향해 있는 힘껏 검을 내리친다. 요기를 감당할 수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어처구니 없게도 검은 공기를 후려쳐 훅 하는 소리만을 냈다.
"미안, 지금 나 지쳐서 상대할 기분이 안들어."
뒤……!?
남자는 차분하게 걸어나가고 있었다. 장난이 아니야. 이길 수있을 리가 없어…….
"아아, 그렇지만 곤란한걸……."
남자는 내게 일부러 들으라는 듯 말했다.
"아기에겐 뭘 먹이면 좋담……? 혹시 알아?"
남자가 뒤를 돌아본다. 왠지 기운이 빠져 검을 집에 넣자, 남자가 생글 웃어보인다.
"모유겠지. 그 아이는……."
"응~. 내 아이. 귀엽지 않니?"
좀 더 크면 사람을 해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갖고 있다는 점을 빼면……말이지.
아이에게서는 남자와 같이 커다란 기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평범한 인간의 아이인가 하면 그것 역시 아니였다. 아마 요괴인 저 남자와, 이 마을에서 살던 인간인 여자 사이의 아이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아마도, 반요.
"그나저나 포기가 빠르구나? 격을 잘 알고있는 걸 보니 실력 좋은걸. 절망하지는 않아? 네가 구하지 못한 마을에 대해……. 아아, 그런가. 너 사람하고 유대가 그닥 없어보이네. 나는, 죽일때 아쉬웠어~."
뭘 혼자서 지껄여대는거야. 아쉬웠다…라는 말은 결코 죄책감을 느꼈다는 말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장난감을 잃어버린 정도밖에 되지 않으리라.
"너, 재미있네. 너랑은 좋은 사이가 될 수있을 거같아. 이름은?"
"요괴에게 가르쳐줄 이름따위,"
"나는 오리하라 이자야. 본명이야."
어이어이, 진짜냐……. 이름을 가르쳐준다는게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지 모르는 거냐?
"알아. 아무리 나라지만 제약은 상당해. 가르쳐줄까? ……반정도? 그러니까, 너와는 좋은 사이가 되고 싶다니까?"
졌다. 반정도 제약을 받아도 나따위에겐 지지않는다는 소리다.
"헤이와지마……, 시즈오……."
이름까지 말하기전에 일순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름을 알려주든 주지않든 저녀석이 주도권을 쥐고있고…….
이름을 말하는 것을 끝내자, 녀석의 눈이 일순 동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쉽게 말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후후, 본명을 교환한건 이번이 세번째야. 기분좋아라. 특히 퇴치사하고 한 건 처음이야. 다들 이름을 알려주면 우쭐해서는……. 공격해오니까 죽일 수밖에 없잖아~. 이름 불려지면 나도 다급하다구."
아아, 역시. 내가 손들지않았다면 죽일 요량으로. 조금은 다행일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채였다면 적어도 편하지는 않았을 거다.
"이리와, 시즈오. 같이가자."
"사람이름을 개부르듯이 부르지마!"
이름을 알려준다는건 구속당한다는 의미. 힘에 어느정도 제약을 받는다. 제약을 받는 건 어느만큼 이름을 많이 불렸는가에 따라 달라지는데, 나같은 경우에는 부모님포함 동생과 몇몇 지인 정도밖에 부르지않아서 제약이 거의 없지만, 보통 사람은 뜻도 없이 악의를 가진 자가 '음'만 부르기만 해도 죽음에 다다를 위험성이 있을 정도로 위험하니까.그러니까 저주할 때는 이름이 필요하다.
저녀석은 요괴치고 반이나 된다는 건…….
"생각하는게 다 보이네."
"윽."
보일리가 없잖아. 네 녀석이 이상하게 눈치가빠른 것 뿐이지. 그리고는 녀석이 가르쳐줄까? 하고 입을 달싹인다. 아이를 안고 있지 않았더라면, 커다랗게 팔을 뻗었을 것만 같은 밝은 표정으로 그는 말했다. 아니, 외쳤다.
"나, 인간이 좋거든! 사랑스러워!"
방금 마을하나를 날려버린 녀석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응, 너도? 그렇지?"
꺄르르 대는 아기를 보며 '이자야'는 좋아했다.
"시즈오, 같이 가줘. 나 지쳤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이자야는 자신의 아이를 안아들고 촐랑대며 걸었다. 지쳤을리가. 단지 구실이다. 저 녀석은 내게 목적이 있겠지, 비상식량……이라던가.
"뭐, 석연찮으면 날 감시한다는 명목은 어때, 시즈오?"
그래, 석연찮아. 항상 혼자 여행해왔는데 동행이, 그것도 요괴인 동행이 생기다니.
방금 마을하나를 초토화시킨 괴물하고….
"감시?"
"감시! 모르잖아? 또 마을을 저렇게 만들지도."
…….
수행이라고 생각하자.저녀석이 원하는 걸 들어주는게 절대 아니다.
"그리고, 정했거든."
이자야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산길로 오르면서 중얼거렸다.
"내게 최후를 줄 사랑스런 인간은 '헤이와지마 시즈오'라고."
묘한 길이 될 것만 같다.
*
"하히, 잠깐, 만, 시즛, 오… 좀, 천천…히…!"
아이를 안고 밤의 산길을 오르는 건 역시 무리인가 보군요, 이쯤에서 쉴까요? 하고, 동행이 사람이였다면 그렇게 말해줄 용무는 있다만…….
"시꺼! 요괴주제에 허약한 척하지마."
"기모노에,헉, 아이에 내게,후우, 제약은 많다고?"
"요괴잖아! 괴물같…아니, 괴물의 체력은 어딨어!"
"그렇게, 소리치지마, 헉, 호랑이가 올지도, 모르, 잖, 후우…."
이 산에 호랑이는 없어, 하고 말하고 이자야를 무시하고 그대로 익숙한 밤의 산길을 타는데 자꾸만 거칠어져가는 녀석의 숨소리가 걱정되어서 뒤를 돌아보고 어이, 괜찮아? 하고 물어보자,
"아아……. 오늘 무리도 했고, 인간의 모습은 익숙치를 않아서……."
아, 뭐야 저녀석. 사족(四足)요괴였나. 두 다리만 써서 걷는게 어려운 건 이해하겠지만.
"그리고 이 아이, 배가 상당히 고팠는지…."
아, 그리고보니 들은 적 있다. 요괴의 아이는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면 안고있는 자의 기력을 빨아들인다고 했나. 아까부터 아이가 조용하던건 그런 이유?
"이 정도 속도로 빨아들이는 거라면 평소엔 무리가 없겠지만, 역시 오늘은 좀 지치네."
어둡지만 이자야의 안색을 살피자 강행은 무리인 것 같아서 결국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왠만하면 산은 넘고 싶었는데……. 어쩔 수없나. 그래도 '자식'이라고 안고 가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 정이 느껴져서 조금 배려하기로 했다.
"10분 걸으면 조금 평탄한 지대가 나오니, 거기에서 자도록 하자."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이자야가 웃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고마워, 라고 말하면서.
평지에 자리를 깔고 앉자, 이자야가 아이를 내려다 놓는다.
밤의 추위는 내게 있어서 치명적이기에 챙겨둔 부싯돌로 불을 지피며 이자야에게 묻는다.
"마을은 왜 그렇게 만든거야."
"알고싶어?"
숨을 다 고른 이자야가 히죽하고 기분나쁘게 웃는다.
"어."
긴 대답없이 그렇다고 하자, 이자야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잠시, 뭔가를 회상하는 듯 허공을 응시하다 눈을 감고는 피식하고 혼자 웃어보인다.
"내 아이를 죽이려했어. 그것뿐이야."
이자야의 옆에 앉는다. 아마, 그것뿐은 아니리라…….
아니리라…….
*
"잘잤어?"
"우와아악!"
아침에 눈을 뜨자, 이자야의 얼굴이 정면으로부터 보여서 깜짝 놀라 소리지르자 이자야도 놀라서 뒤로 몸을 뺀다…랄까 내 배위에 앉지마.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덮쳐져서 먹히는 줄 알았다고."
"덮…먹히……. 아아, 원한다면? 낮보단 밤에…""바보, 그런 의미가 아니고 말 그대로의 의미로!"
정말 사람 머리아프게 하는 녀석…….
"응? 고기냄새?"
"아아, 응. 조금. 사냥해온걸 받았어."
사냥해온게 아니고, 받았다니……? 지나가던 사람이라도!
"이 근처에, 정말 호랑이는 없더라고. 덕분에 늑대나 여우가 많지 뭐야? 걔네로부터 받았지."
아, 이 녀석 요괴였지. 것도 사족(四足)요괴라면, 동물……, 맹수형태의 요괴일 것이다. 어제밤종일 아이를 안고 헉헉거리며 걷는 모습이 눈에 박혀서 요괴라는 생각을 거의 잊었던 모양이다.
이자야는 털은 깔끔하게 손질했어, 라고 말하고는 무언가의 다리가 구워진 것을 건네온다.
"아, 혹시 육식금물의 수행이라도 하고 있어?"
곤란하네, 난 계속 육식할건데 수행에 방해되지않을까? 하고 걱정해오지만, 난 그런 수행하지도 않는다. 꼬챙이에 끼인 것을 입에 넣는 것을 보고 이자야는 선선히 웃었다.
"으, 싱거워."
육질밖에 느껴지지않았다. 나쁜 맛은 아니지만 좋은 맛이라고 하기도 묘하다.
"아……. 그렇구나, 소금이나 간장이라는게 필요했었지."
사람의 사고를 하는데 익숙해져있는 듯한 녀석도 사람은 아니라서 거기까지는 생각 못한듯하다.
이윽고 아기가 '으아앙' 하고 울기시작하자, 이자야는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품에 안았다.
"……늑대젖이라도 먹으려나?"
"먹지않을까? 그 애 반요잖아."
아무리 사랑스럽게 대하는 중인 자식이라도 자신의 기력을 직접적으로 쪽쪽 빨아들이는데 반가울리가 없나. 저녀석이 가진 건 인간의 부성애가 아니고, 모성애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동물이 대를 잇기위해 자식을 데려다니는 것이랑 비슷하니 여차하면 저 아이를 버릴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럼 잠깐 갔다올게."
낮이여서 알 수있었지만, 녀석의 용모는 꽤 정갈했다. 입고있는 의상도 검은 색상을 바탕으로 보라색 의 수가 놓여있는 것이 꽤 고급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봐야 모습은 인간의 것을 본 뜬 것이고, 옷은 빼앗은 거겠지만.
그럼 녀석이 다녀올 때까지 조금만 자둘까…….
*
"이-야아, 배부른 행복에 젖어서 잠든 아이는 참 귀엽네!"
아이의 끼니를 해결하고 온 이자야는 기력을 빼앗기고 있지 않은지 가볍게, 사뿐사뿐 산길을 내려갔다. 한 발로 총총 내려오라고 해도 그렇게 할 것처람 어제밤과는 영 다른 판이였다.
"그렇게 애가 먹는 기력이 많은 거냐? 애인데?"
"여자 100명하고 상대하는 기분이였다니까?"
……. 아아, 그러세요.
쓸데 없는 이야기를 히히덕 거리고 있다가도 갑자기 찾아온 정적에 이자야가 자신의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내게 물어왔다.
"이 애, 이름은 뭘로 할까?"
"지어지지않은 거야?"
인간의 손에 있었으니까 지어졌을거라고 생각했다. 이자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없어, 하고.
또 한번 긴 정적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역시 이자야가 정적을 깬다.
"시즈오가 지어볼래?"
"바-보. 자식 목숨까지 내 손에 맡기려고?"
내가 단명할 이름을 지으면 어쩌려고. 그 애의 피의 반은 인간이잖아? 이름에 영향을 안받는 몸이 아니라고.
"후후, 시즈오를 믿어."
믿지마, 기분나쁘게…….
"딱히 좋은 거 생각안나는데."
그냥 요괴의 이름이였다면 '츠치노코'어떠냐하고 아무렇게나 말해버렸겠지만, 반은 인간, 그리고 녀석이 저렇게나 아끼는 아이라고 생각하니 이름에 대한 공부를 하나도 하지않은 나로서는 지을 수가 없었다.
네가 지어. 아버지니까, 분명 좋은 이름 줄 수 있을 거야.
그럴려나, 하고 아이를 바라보는 이자야.
"그러면,……히비야는 어때?"
이자야가 물어온다.
"나쁘지않은 거같은데. 그걸로 하지 그래?"
"그래, 히비야……. 그럼, 시즈오가 히비야의 대부네!"
"뭣, 무슨 말을 하는거야!"
"그치만,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
빠에에,하고 히비야가 소리낸다. 잠에서 깬모양이다. 그 모습이 마치 이자야의 말에 긍정하는 것만 같아 화가 난다.
"내가 지은 것도 아니잖,으악!"
"우왁, 시즈옷!"
이자야가 내 목덜미를 잡는다. 화내는 도중 발을 헛디뎌 그대로 미끄러져 죽을 뻔했다. ……. 이 녀석, 역시 요괴다. 한팔로는 아이를 안고, 한팔로는 나를 잡고 순전히 두다리의 힘으로 내리막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고마워."
"아니야.오랜만의 동행이 어처구니없이 죽어버리면 외롭거든."
또 저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어딘가 안타까워서…….
"후후, 히비야의 대부까지 되었네! 이제 우리 사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 맞지?"
"웃기지마."
"기뻐."
정말로 기쁘게 웃는 녀석. 제멋대로 관계를 만들고는 정말 기뻐하며 내게 가지지않는 것이 좋은 호의를 잔뜩 가진다. 어딘가 내버려둘 수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콕콕 찔러온다. 난 널 감시하고 있는 거라고. 힘주어 목소리를 내는데도 이자야는 여전히 웃으면서, "난 너랑 좋은 사이가 되고 싶어." 하고 말한다.
좋은 사이…….
*
산을 다 내려오자, 곧장 마을이 보였다.
"너는 저 마을에서 아이의 끼니를 어떻게든 해결하면 될거야. 나는 사형으로부터의 심부름이 남아서 곧장 다음 마을로 갈거니까, 이제 안녕이네. 하룻밤만에 대부는 우스우니까 정말 그만둬주라."
"에?"
거기까지 말했을 때, 이자야는 정말 이해하지 못했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뭘 그런 표정을 짓는거야, 당연하잖아?
"같이 움직여주기로 했잖아?"
"언제."
난 그런 말도 약속도 한 적이 없다만. 어젯밤, 약하게 대해줬다만 그건 어제의 일. 갈 길이 비슷한 것도 아니고 같이 가줄 용무도 없다. 여기는 날카롭게 내칠 차례겠지.
"우, 웃……."
애처럼 울려고 작정한 건지-아이를 안고 있는 아버지주제에-, 입술을 자근자근 씹으며 눈을 그렁그렁…….
"우는 척해도 안돼."
"쳇." 혀를 찬다.
"어젯밤, 너때문에 여러모로 예정이 틀어져서 서둘러야 한다고."
마을 건이나, 산속의 길 건이나.
"……그러면서도 어울려준거구나. 다정하네. 미안. 계속 귀찮게 해서. 여기선, 헤어지도록 할까."
"아아. 인간에게 해를 안끼치는 선에서 너희 부자의 무운을 빌게."
"고마워. 그럼……."
이자야는 마을로 향했다. 나 역시 다음 마을을 향해 서두르지않으면……!
>>
"……."
"헤헤헷."
꽤나 감동적인 이별을 했다고 생각했더니 이 녀석이 왜 여기에 있는걸까?
사형의 심부름으로 이 마을 신사에 친서를 전하고, 민가로 내려와 늦은 점심을 들려했는데 눈앞에 유부남인 홀아비요괴가 있었다.
팔짱을 끼고 질렸다는 눈으로 잠시 바라봐주자, 한 팔에 아이를 들고 남은 한 팔로 자신의 머리 뒤를 도담거리면서 어수룩한 모습을 만들어내, 변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다들 친절해서 말이야. 이 아이와 함께 떠돌거라고 하니까……."
아낙네들이 너의 곱상한 얼굴에 홀려서 이것저것 금방금방 챙겨주는 바람에 곧장 여기로 향할 수있었단 소리냐.
"응, 헤헷."
귀여운 척하지마. 다 큰 녀석이…….
아무래도 쉽게 끊을 수있는 인연은 아닌 모양이다. 정말로 '감시'해볼까하는 생각을 하는 내 자신에게 말릴 수는 있냐고, 되묻다가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이자야가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그러다가 녀석이 애지중지 껴안은 아이 히비야를 다시금 보게 되었는데, 나는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자야에게 정이 들었나보다. 고작 하룻밤으로. 아기의 힘은 대단하구나.
"밥 먹으러 갈래?"
*
"갑자기 천은 왜 사러가는 거야?"
"곧 초하루잖아?"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내 호기심에는 별 신경쓰지 않으면서 이자야는 가게에서 하얀색 천과 황색의 천을 사고는 실과 바늘을 받았다.
"초하루랑……천이랑 무슨 상관인데?"
"후후, 비~밀."
마을을 나오면서도 영 석연찮았다. 무슨 속셈인거야.
"아, 너 히비야의 식사는?"
"염소의 걸로 받아왔어. 뭐, 이 아이에게는 사람아니면 늑대가 제일 이라고 생각하지만.
매 산마다 새끼친 늑대를 기대할 순 없잖아?"
아, 그런가. 이 녀석은 오오카미(狼 늑대)요괴인건가. 그나저나, 랑(狼)이라면 늑대무리 위에 군림하는 게 보통인데. 역시 이 녀석 괴짜구나. 사람 좋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대강 준비는 끝난 건가?"
"나는 그래. 시즈오는?"
글쎄, 빠진게 있던가. 하고 하늘을 보는 중에 갑자기 생각난 그것의 명칭을 입에 담는다.
"경단."
*
이자야와 동행한지 5일째. 오늘은 초하루가 된다. 초하루의 축시는 그 어떤 날보다 위험하기 때문에 나는 근방의 마을에서 몸을 추리고 문은 절대 열지 않고 자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마을 밖에서 지낼거야."
예상이외의 이자야의 대답에 놀라면서도, 녀석도 요괴라는 사실을 인식하자 놀랄 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이자야에게는 오늘밤 축시가 기분좋은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히비야는……? 위험하지 않아?"
걱정을 담아 묻자 이자야는 고개를 젓는다. 내가 오늘 밖에서 머물겠다는 이유는 이 아이때문이니까. 하고, 잠든 히비야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너 말이야."
"응?"
"완전히 아버지구나."
너라면 왠지, 네 아이를 위해서 뭐든 할것만 같아. 처음에 했던 생각은 취소토록할게. 이자야는 내 말을 듣고는 이상한 얼굴을 했다. 무슨 표정인지 알 수없었다. 불안해보이기도 하고, 놀란 것같기도 하고, 화난 것같기도 해서….
"아아앙!"
히비야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이자야는 당황하지않고 히비야를 안아든다. 요괴중에는 간혹 요기를 빨아들이기 위해서 자식이라는 것을 만들어 먹어버리는 자들도 있다. 물론 랑은 긍지높은 상등요괴에 해당되니 하등과 같은 짓은 하지않겠지만, 무엇보다 히비야는 손이 많이가는 '반요'다. 완벽한 성장을 이루기전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요기를 채울 수없다. 잘도 챙겨내는 걸 보니 정말 애정 담뿍인듯하다.
이자야에게 안겨있는 히비야의 볼에 손을 가까이 해, 쓰다듬는다.
"넌 좋은 아버지를 뒀어, 임마."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히비야는 꺄르르하고 웃었다.
*
"그럼 나는 이만."
자시쯤이 되어서 이자야는 히비야를 안고 나에게만 귀뜸하고 몰래 숙소를 빠져나갔다. 물론 이자야가 약해서 걱정된다는건 결코 아니다.
"자볼까……."
쓸데없이 백귀야행같은데 휩쓸릴 녀석이 아니란 건 잘 안다. 그러니까……, 내가 걱정되는 건 히비야라고…!
"아악, 젠장!"
어쩌지? 나가봐? 아, 아니. 오늘같은 날, 위험한 건 이자야와 히비야가 아니라 나잖아. 나……. 다른 녀석 걱정할 틈은 없다고.
자자, 자고 일어나면 어떻게든 되어있겠지!
……. 누군가에게 끌려서 휘둘린 적은 여태껏없었다. 호의를 가진 이자야가 접근해오는 것을 막질 못하고 받아들인다. 어쩌면 저 웃는 얼굴 뒤에 이빨과 발톱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마음을 편히 놓는 것도 문제요, 그렇다고 경계하고 있자면 이자야 쪽에서 뭔가 수를 써올지도 모르니. 자신을 숨기기가 어려운게 내 큰 단점 중 하나가 아닌가.
*
응…. 잠들었었나. 아침인가, 하고 눈을 뜨자 그곳에는
"일어났어요? 대부."
"우와아아악!"
"히갸아악!"
이자야를 꼭 닮은 아이가 내 위에 올라타고 있길래 놀라 서 소리쳐서 몸을 빼는 도중, 아이도 놀랐는지 소리를 질렀다. 다만, 이와 손톱을 드러낸 점 빼고는 평범한 아이였다.
"왜그래, 무슨일이야!"
뒤늦게 이자야가 소리치며 달려왔다.
*
이전 이자야가 나를 깨웠을 때와 비슷한 자세로 나를 깨워오는 '히비야'덕에 놀라버렸다.너희 부자는 조금 인식해두는 편이 좋아, 눈 뜨자마자 정면으로 얼굴이 보이면 얼마나 무서운지 아냐?
"그래……. 히비야, 구나."
"네, 대부!"
어제만 해도 아기의 모습이던 히비야는 7~8살의 모습을 하고있었다. 아아, 천을 사던 이유는 이때문이였구나 하고 이해한다.
"벗긴 채로 두기는 곤란하고, 미리 의복을 마련해두려니 히비야가 얼마나 성장할지 알 수없었으니까."
히비야는 천을 대충 걸친 다음 바느질로 옷에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그 위에 황색 천을 두르고 있었다.
바느질은 이자야 솜씨인가. 늑대치고 나쁘진 않았다.
"오늘은 이 아이의 옷을 사러가려고."
"비싸잖아?"
"재력은 있어."
시즈오는 어째서 날 돈도 없는 부랑자로 보는 걸까? 어느쪽이냐면 부자란 말이야. 하고 품에서 쌈지를 꺼내 풀어서 보여준다.
금가락, 옥가락, 진주…….
"너 말이야……."
"수십년전 일이니까 금방이라도 퇴치할 것만 같은 눈 하지말아줘. 나도 내가 왜그렇게 날뛰었는지는 몰라."
한창 잘 나갈때 잘도 차곡차곡 쌓아놓은 거겠지. 마을 몇개쯤 밟아주면서 수취했을 것이 분명한데, 그런 것 치고는 꽤나 소박한 거보니 손이며 발이며 다 털어낸 지 오래였나보다.
"아, 그리고보니 이녀석."
아까 놀랐을 때, 이빨하고 손톱 세우지 않았나.
"뭐? 히비야, 자제하랬잖아."
"그치만 너무 놀랐는걸요……."
풀죽은 채 볼에 바람을 불어넣는 히비야. 토라지는게 귀엽기도 하고 좀 측은해보이기도 해서 일단 히비야의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처음이잖아. 괜찮아. 적응해가면 될 일이야."
"대부……."
"시즈오는 너무 물러."
"그리고, 대부라고 하는 건 관둬주라. 네 이름은 이자야가……아버지가 지어주신거잖아?"
"대부의 의미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아니예요! 후견인도 있어요!"
바락바락, 악을 쓰며 대부라고 부르겠다고 주장하는 히비야에게 한 발 물릴 수 밖에 없었다.
나참……. 별 이상한 요괴들도 있네.
*
점심때를 좀 넘어서 이자야와 히비야는 숙소로 돌아왔다.
"오, 히비야. 금의환향이냐? 잘 어울리네."
아침에 보았던 것과 비슷한 색배열이였다. 편해보이는 반바지차림.
칭찬해주자, 기쁜 듯이 달려들어와 안긴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이자야가 한소리하지만 안 들리는 척을 하고 비비적 거리길래 안아올리자 이번엔 뺨을 부비댄다.
"저 애는 정말……."
괜찮잖아, 귀여운데 이정도 어리광정도야.
동생인 카스카나 나나, 그닥 어리광부리는 자식이 아니라 부모님이 섭섭해했었던 적을 떠올리니 히비야가 마냥 귀여워보였다.
"대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살짝돌리자, 입술에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스쳐지나감을 느낄 수있었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것이 떨어지기를 약 1초가량.
"아아악!"
내가 아니라, 이자야가 절규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설마 내가 화낼거라고 생각했나? 아이상대로 뭘.
"대부~."
보는 사람도 기분좋아질 해맑은 웃음을 지으면서 또 한번 볼을 비비적거리는 히비야에게 "이 녀석."하고 가볍게 딱밤을 먹이자, "우, 아파요."하고 손으로 맞은 곳을 감싸쥐는 히비야의 뺨에 가볍게 입맞추고 바닥에 내려놓는다. 에헤헤, 하고 웃는 모습이 귀엽다.
이자야는 딱딱하게 굳은 채로 그 모습을 보고있었다.
"왜그래, 이자야?"
이자야는 말 없이 쪼그려앉더니 달려서 자신에게 안기려는 히비야의 보드러울 것이 분명한 뺨을 꼬집는다. 살짝이라 그닥 아프진 않았겠지만, 히비야는 썩 좋은 기분이 아닌지 으에에, 하는 소리를 냈다.
"나빴어, 히비야."
>>
히비야에게 마을 구경을 시켜주고 싶지만, 어제 아기인 히비야를 본 사람도 꽤 있기때문에 여기서는 무리라며 이자야는 다음 마을로 향하는게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보니 시즈오는 무슨 일로 여행중?"
"수행중. 심부름은 몇일전의 그걸로 끝이야."
수행중이라고 해도, 요즘은 대요괴들이 잔챙이들도 세력에 넣어서 요괴퇴치할 일은 그닥 없지만 말야. 너나 감시하는 게 맞는 일인거 같다. 거기까지 말하자, 이자야는 눈을 반짝이고 무언가에 기뻐했다.
*
채비를 끝내고 난 우리는 뜸들이지않고, 마을에서 벗어났다. 다음 장소까지는 꽤나 긴 여정이 될 것이라 짐이 무거울 것을 예상했는데 나는 둘째치고 이자야가 가뿐히 들어올리는 걸보고 안심했다.
얼마나 걸었을지, 히비야가 더위에 지쳐하길래, 이쯤에서 쉬어두자고 서로 눈짓하면서 히비야에게 냇가에서 물을 떠오라고 하고 나무아래에 앉았다. 히비야만 보고있기도 어색해서 나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너는 여행한지 얼마나 됐어?"
"시즈오랑 만난 날이 처음이야."
그전까진 그 마을에 정착하고 있었어. 정착이라고 해봐야, 나 늙지를 않으니까 인간마을에서는 3년정도밖에는 못하지만.
고작 2년만에 마을사람들의 신용을 죄다 얻고 결혼까지하고 아이도 얻었는데, 의심많은 마을 사람이…….
"응, 내 아이를 죽이려했어. 난, 적당한 틈을타서 이 아이와, 그녀와 함께 나오려했는데 말이야."
"……."
"배신당한거야, 난. 히비야를 죽이려든건,"
"아버지, 대부~."
히비야가 물통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이 다음은, 기회가 된다면."
이자야는 어째서 내게 호의를 갖는 걸까. 이런 이야기도 내 귀에다 흘려주고. 솔직히 댓가없는 호의는 받기가 무겁다. 뭘까, 무엇일까. 단순한 호기심? 그게 아니면……. 정말 그때말한 그 이유인가.
"대부, 표정이 무서워요."
"아,미안."
미안미안, 히비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보인다.
"시즈오."
"아아,"
이자야가 이제서야 눈치챘을 리는 없지만, 스슬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걸 절실히 느꼈는지 내 이름을 부르며 조심하라고 일러온다.
뒤쪽으로 3마리, 우측으로 4마리였다. 단연 하등요괴지만 몰려들면 처리하기 곤란하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이자야와라면 충분히 낙승이겠지만…….
"히비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괜찮아, 시즈오. 그 애 지식이 전혀 없는 건 아냐."
히비야는 물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등을 나무에 찰싹 붙이고는 나를 향해 끄덕였다.
섣불리 도주하는 것보다, 우리 옆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훌륭하다. 올바른 판단이다.
"이자야, 너도 못알아보는 거보니 조무래기 급인데, 어떻게 생각해?"
"으으~, 이런 바보들이 오합지졸로 무리지어다니다니……. 창피하네. 어물전 망신은 쟤네가 시키는 거지."
소매속에 손을 집어넣어 주부를 잡는다. 우선 5장. 뒤쪽의 셋은 내가, 우측의 넷은 이자야가 맡으면 될 것이다. 속전속결로 끝내지않으면 히비야에게 폐가 가버린다.
눈빛교환을 끝낸 우리는 각자의 방향을 향해 달려든다. 설마 공격해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건지, 당황하는 기색이 상당했다. 주부를 던진다. 명중률이야 아무래도 좋다. 저것을 피하느라 적의 자세만 흐트러진다면야. 검을 뽑아들어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적하나를 향해 힘차게 검을 휘두른다. 촤악, 하고 기분나쁜 피가 솟구친다. 착지와 동시에 발을 비틀어 두번째 녀석의 급소를 찌른다. ─커헉! 하고 기분나쁜 소리를 내는 녀석의 배를 걷어차 검을 뽑으면 내장을 찔렀던 검이 혐오스러운 무언가를 묻힌채다. 마지막인 녀석을 바라보며 퉤, 하고 침을 뱉는다. 녀석은 손톱과 이빨을 세우며 가가가아악 하고 발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흘깃하고 눈을 흘리면서 "뭐해, 빨리!" 하고, 외쳐댔다.
…뭐? 빨리 죽여달라는 건가? 아니야,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다?
"으윽!"
""히비야!""
나무아래에 있던 히비야의 목을 팔로걸쳐 들고는 칼을 겨누고 있는 남자가…….
요괴? 눈치채지 못했어. 어째서! 아니다, 저것은 사람이다.
"히히히, 너네가 날 위협하,면 저 애송,이의 목숨은 업…없는줄알아…!"
이자야쪽을 바라보자, 이자야 역시 한 마리가 남은 상태. 어쩔 생각이지.
"하아."
이자야가 한숨쉰다. 버리는거냐, 히비야를?
이자야는 내쪽을 보면서 웃어보였다. 섬뜩함과 함께 어딘가 안심되는…아아!
처음만났을때, 그때의 그것이라면. 게다가 저녀석은 랑이다. 늑대의 왕. 기력으로도 이런 녀석들따위 어떻게 된다. 안심. 어떻게든 된다.
"그럼, 일,단……. 네 놈부터, 죽여,줄,까? 야마부시가, 동료를 잃고 울부짖는, 게 보고싶,군."
이자야의 눈이 번뜩인다, 늑대의 예리한 눈매. 아마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단숨에 히비야에게로 향하겠지. 그 순간, 히비야를 구출해내는 순간, 이 요괴 두마리는 단번에 내게로 달려들 것이다. 잘못하면 좀 아프게 끝나겠지만 이자야가 사라진 순간 들고 있는 검과 주부를 사용해서 대적하고 순식간에 종료시키면 된다. 셋 모두, 다치지 않고 끝날 수 있다.
"자, 무기를, 흐흐, 내려놓아. 그,리고, 다,다른 생각은, 하지않는게,조,좋을거야."
그렇게 말한 녀석은 내 뒤로 향해 목을 조이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닿지마, 역겨워. 그렇게 생각한다. "자,어,어,어서!" 재촉하며 검을 내려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 그, 아픈 종이도…" 주부까지 내려놓은 나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머리를 쓰는 놈이였다. 아니면 우리가 너무 얕잡아 보고 있었나. 칫하고, 이자야가 인상을 찌푸린다. 이자야가 움직이기 어려워진다. 그러는사이에 요괴녀석의 손톱이 점점 내 목과 가슴을 가까이…….
콰득……!
"으아아악!"
일순, 콰득하고 이로 과일의 육즙을 짜내는 듯이 흉폭한 소리가 난다. 히비야가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팔을 깨물고 다리로 힘껏 차서 그 곳을 벗어나려했다. 그와 동시에 이자야가 자신의 뒤에 있던 요괴를 다리로 차 밟아 짓누르고 단검으로 찔러죽인다. 아차! 내 뒤의 요괴가 나를 찌르려한다, 제일 위험한건 나……!
"젠…!"
가슴팍이 찔리는 그 순간 머리로 요괴의 머리를 치고는 검을 발로 차올려 요괴의 배짝에 힘껏찌른다.
"시즈오!"
"대부…!"
*
"아야야……."
"미안, 내가 눈치를 못채서."
"잡혀버린 제 탓이 더 커요."
이자야가 가슴팍에 그인 내 상처를 봐주고 있었다. 심하진 않지만 흉터는 질거라고 했다. 이와중에도 똑닮은 이 부자는 반성회를 개최중이였다.
"설마 사람하고 손잡았을 줄이야."
"놀랬어요."
"아, 히비야."
놀랐다는 히비야에게 입을 벌려보라고 말하고는 지금은 세워져있는 그의 이를 손가락으로 도담거리며 무언가를 확인하는 이자야.
"……맛, 어땠니."
이자야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히비야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도 알게 되었다. 히비야의 반은 요괴다. 인간의 피가 맛있다고 느끼며 먹고싶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자제력든 인내력이든이 생기기전 한참 어린 지금 피맛을 알았다고 한다면…….
"맛없었어요!"
몇번이고 입을 헹궈냈는지 몰라요. 기분나빠요…….
도리도리 고개까지 흔들면서 필사적으로 말하는 히비야. 거기까지 말했을 때 나는 안심할 수있었다.
다만 이자야는 그러지 못했는지 다음 질문을 했다.
"갈길때는?"
손톱으로 갈겨찢을 때는? 기뻤니? 즐거웠니? 어땠니.
히비야는 말없이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연약하지않은 날카롭고 도타운 늑대의 톱.
"……."
"히비야……."
이자야는 있는 힘껏 히비야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보듬으며 감탄한다.
"잘했어, 잘했어……."
나는 그제서야 히비야의 손을 볼 수있었는데, 손톱을 안으로 집어넣고 주먹을 쥐느라 손 안이 찢기고 말이 아닌 상태였다. 7살의 손이라고 할 수없었다. 히비야는 사람을 결코 찢지않았다. 때리고, 도망쳐서…….
"미안해, 히비야. 미안해……."
이자야가 히비야에게 사과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난 잘 알수없었다. 다만, '난 인간을 사랑해.'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조금 이해해보려고 했다.
히비야는 말 없이 이자야에게 안긴채로 '와아앙'하고 울고있었다.
히비야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없었다. 아직 1살도 채되지않아, 겨우 7살짜리 행세를 하고있는 아이가 사람을 때렸다. 손톱을 감추고 주먹을 쥐었다. 무슨 의미인 것일까…….
*
"그래?"
"응. 히비야가 아기일때, 내 기력을 먹었을때 아마 내가 가진 지식도 조금씩 흘러갔을거야. 뭐 거기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모르는 것도 많으니 반쪽짜리 지식이랄까. 보아하니 일상언어는 완벽해보이는데? 여하튼 이 애는 보통 7살의 인간아이보다 명석한거지."
다만 가치관은 그렇지않다고 덧붙였다.
"솔직히 히비야는 인간답게 살아줬으면 해."
내 무릎위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히비야를 바라본다. 새근새근하고 잠든 히비야의 손안은 어느새 상처하나 없이 말끔히 보송보송해져있었다.
"무리겠지만."
내 억지야, 하고 이자야는 쓰게 웃어보였다. 안타깝다.
"이자야."
나조곤히 그의 이름을 부르자, 응?하고 고개를 내쪽을 향해돌린다.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갠다. 혀로 입술을 핥자, 그가 허락하고서는 닫힌 입술을 벌리고 그 벌어진 틈으로 혀를 집어넣는다. 잠시동안 얽혀서 어딘가 간질간질한 뿌듯함을 느끼고서야 서서히 입을 떼었다.
"……후우……. 시즈오……."
"응."
"한번 더……."
"싫어."
"으응……."
"이번엔 네쪽에서."
눈을 감고 늑대가 내 입술을 탐하기를 기다린다. 나쁘지않은 감촉에 녹아내려 기쁨을 받아들인다.
이 녀석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벌써 상관없어져 버렸다. 내가,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끌리고 있어, 이자야.
어라?
어디선가 시선을 느껴, 아래를 내려다보니 히비야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이자야도 나도 당황해서 굳어있으려니 히비야가 일어서서는 "저도요~." 하고 이자야의 입에, 내 입에 가볍게 입맞추고는 뾰로통해져서 다시 무릎베개위에 눕는다.
"아버지랑 대부만, 치사해요."
7살의 눈에 과연 어떻게 비쳤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혹시 의미를 아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숨이 막히기까지…….
히비야는 실은 졸렸는지 눈을 감자마자 곧 새근새근 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자 이자야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히비야가 깨지않도록 숨죽여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즈오."
그가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어쩌면 이미 오리하라 이자야에게 구속당했을지도 모르겠다. 불려지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황홀한 심경을 느끼는 것은…….
"……사랑해."
이 감정은, 벅차오르는 무언가는, 분명 황홀하다.
"나,"
나도 그렇다고 입을 열려는 순간 제지당했다. 검지로 내 입술을 누른 이자야는 고개를 저었다. 안돼, 하고 입모양을 만들어낸다. 어째서, 물을 새도 없이 이자야는 또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 말하도록 해주지않는거야. 왜,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는거야. 물어볼 수가 없어서, 나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을 피했다.
히비야가 세상모른 채 잠들고 있었다. 어쩌면 세상모른 체할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인간의 선입견이다. 히비야는, 그 작은 손에 올 아픔을 이겨내고…….
히비야도 이자야도 내가 모르는 너무나도 머나먼 곳에 앉아있었다. 다가가고 싶다고 생각할 수록 애처로워질 뿐이다.
그렇기에? 그렇기때문에 이자야는 내 입에서 새어나올 분명 달콤할 그 말을 막아버린 걸까.
입이 간질거린다. 밖으로 나왔어야할 그 말이 입술사이를 어떻게서든 비져 나오려고 안간힘을 쓴다. 나올리가, 없었다.
>>
히비야는 꽃이며 풀이며 나무며, 식물을 좋아했다. 속으로 랑의 피가 있는 아이같지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입밖으로 내지않았다. 길을 거닐며 가지고 놀 수있는 것이 그정도 밖에 없어서 인지는 잘 알 수없었지만, 지나가면서 꽃을 발견하면 꼭 이름을 외치고, 모르는 종류라면 나나 이자야에게 물어보았다. 물론 우리라고 해서 모든 식물종류를 아는 것은 아니기때문에 글쎄…….하고 대답을 회피하는 경우도 종종있었는데, 하루는 "그럼 히비야가 지어봐."하고 이자야가 말했는데 히비야는 그 꽃을 대나무로 만든 긴 잔에 물을 붓고 넣어다니면서 즐거운 듯이 이름을 고민했다.
아이가 있는 가정은 이리도 기쁠까? 남의 아이라도 이렇게 귀여운데, 이자야는 오죽할까 싶으면서도 나도 뒤지지않게 예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숙소를 잡아서 적당히 쉬고 다음 마을까지의 채비를 하며, 히비야를 씻기고 머리손질을 해주고 있을 때였다.
"이런, 벌써 다 씻었니?"
네, 하고 히비야가 대답하자, 그럼 내일 출발하는 길에 들르지 뭐, 하고 이자야는 욕탕으로 들어갔다.
"뭘까요? 아버지의 눈, 굉장히 즐거워보이셨어요!"
"글쎄……."
확실히 그렇게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눈은 그다지 보이지않는지라-그래봐야 같이 다닌지 한달도 채되지않았지만- 나도 그를 설레게 한 것의 정체가 궁금했다.
히비야가 잠들고 슬쩍 물어보아도, "응, 내일이면 알게 될건데."하고 대답을 회피했다.
"구두쇠."
다리로 이자야의 다리를 감자, 이자야 역시 내 다리위에 자신의 다리를 포개왔다.
"흥, 구두쇠라 미안하네요~."
키득키득하고, 히비야가 깨질 않길 바라고 조심스레 웃다가 다시 눈이 마주쳤을 때는 이상한 분위기를 감당할 수없게 되었다.
"시즈오……."
"……."
이자야의 입술이 점점 다가왔다. 코앞까지 왔을때 슬그머니 밀어내자, 실망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말한다.
"알게 될때까진 금지야."
이정도면 알려줄거라 생각했는데 이자야는 반대로 돌아누워서는 잠자는 히비야에게 서너번 입맞추고는 잠들었다.
잠결에 히비야가 거부하는 소리가 들렸다. 애 깨우지말라고.
하아……. 저 구두쇠.
다음 날 아침부터 이자야가 보이지않길래, 무슨 일일까 하고 있었는데 돌아올 때 책 한권을 들고 와서 히비야에게 건넸다. 책 자체가 비싸기도하고 서민 사이에 유통이 금지된 영지도 많았는데 이곳은 아닌 모양이였다. 내용은 더 경악할 만했는데, 소설도 수필도, 견문지도 아닌 식물에 관한 내용이였다.
"유통되고 있었단 말야?"
"글 모르는 행상이 팔고 있길래. 아마 이런 내용인 줄도 몰랐을걸."
지도,지역이나 식물이나 동물에 관한 도서는 드물다. 큰 신사나, 영주의 성 정도가 아니면 구하기도 어렵고 금서급이다.
"아쉽지만, 다 읽으면 땔감으로 써야될걸. 다 외우라고 하는건 무리겠지만."
벌써 바닥에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히비야에게 몇가지 주의를 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저 나이에 보통애들이라면 말도 어수룩할텐데, 벌써 글이라니. 히비야의 노력은 아니였지만, 보기에는 참 뿌듯했다. 그러다가도 한참동안 책을 보고 의아해하더니, 결국은 내게 무언가를 물어왔다.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좋으려만.
"발열이나 해열이 뭔가요?"
대답할 수 있는 것이여서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세하게 대답해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책을 읽는 히비야를 보니 내가 키운 것처럼 대견스러웠다.
"그래서, 구두쇠씨? 알게 될 거란건 이거야?"
"아니, 마을을 나서야해."
그렇게 말하고 이자야는 나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알게 되면 그 괘씸한 입술을 잔뜩 괴롭혀줄거야."
그의 그 한마디에 나는 이제 곧 다가올 해방감에 기뻐하고 있었다. 마음부터 몸까지, 이자야의 모든 것에 반응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게까지 느껴지면서도 어쩔 수없다는 생각을 해버린다.
나는 지금 괘씸한 사랑을 하고 있다.
이렇게나 두근거리고 가슴조이는데도 불구하고, 그와는 가까이가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해가면서 번번히 불편한 것을 느끼는 그런 괘씸함을.
*
이자야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마을에서 벗어난 외진 곳의 절벽이였다. 어찌어찌 샛길을 통해 올라간 곳에는 꽃밭이 있었다. 워낙 사람의 손발이 닿지않는 곳이다보니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자라난 꽃들이였지만, 자연 그대로. 라는 느낌이 강했다. 히비야는 이미 얼굴을 붉히며 꽃밭으로 뛰어들었다. 덕분에 근처에 있던 새들이 놀라 날아올랐지만 개의치않고 작은 몸을 딩굴어댔다.
"자아, 그러면……."
히비야가 한눈파는 사이, 이자야가 나를 향한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이자야를 바라보자, "눈은 감아둬." 순간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눈을 감고 이자야를 기다린다. 두근두근, 하고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대부!"
앗차, 싶어서 눈을 뜨니 이미 이자야는 고개를 돌리고 떨어져있었다. 몸을 돌려 히비야를 향하니 이쪽으로 달려오더니 도약해서는 품에 안기려드는 것을 그대로 안아들었다.
"대부, 이거요!"
히비야의 손을 보니 화관이 있었다. 머리에 올려주고는 선물이예요, 하는 것이다. 이 귀염둥이. 고마워, 하고 볼에 입맞추자 기쁜듯이 꼬옥 안겨왔다.
내려달라고 팔을 통통 치길래, 뭘까 싶어서 내려놓았더니 이자야에게로 가까이갔다.
"고마워요, 아버지!" 하고 빙긋 웃어보였다. 이자야는 대뜸 히비야를 안아들더니 목말을 태웠다.
아아, 저런 것도 있었지, 하고 내 자신의 어렸을 때를 회상해낸다. 아버지도 내가 어렸을 때는 자주 저런 것 해주셨는데. 저랬던 내가 벌써 성인이라니. 세월 참 빠르구나.
*
오늘은 결국 노숙이였다. 히비야에게 모포를 덮이고 당번제로 잘까 하고 걱정했지만, 이자야가 그럴 필요없다고 대답해왔다.
"이 근처 늑대가 많더라고."
아아, 수긍했다.
"제대로 자기네들끼리의 서열로 왕도 있는 듯하지만, 내가 있는 한 공격해오진 않겠지."
여차하면 힘으로 굴복시키겠어~하고 꽤 멋있는 말을 해오길래 안심하고 잠들려는데 이자야가 기습적으로 입술에 입술을 겹쳐왔다.
"~~~!"
팔을 잡고 전혀 놓아주지않았다. 숨을 쉬기위해 입술을 벌리자 거칠게 혀를 넣고 진득하게 달라붙어와서 여태껏 해온것과 전혀 다르다고 느꼈다. 뜨거워…….
"……그응, 이자, 야……."
"후우, 사랑스러워. 사랑해, 시즈오. 시즈오, 시즈. 시즈……."
부끄러운 애칭으로 불러오지마……. 그리곤 다시 입을 맞추어왔다. 이마, 눈꺼풀, 눈아래, 코, 콧잔등, 또다시 입, 턱으로, 귀도, 목도……. 잡아먹힐 것만 같으면서도 열렬히 맞추어오는 뜨거운 입김은 거의
성교 전의 애무와도 같아서 부끄럽게도 아래쪽도 달아오는 것을 느꼈다. 눈을 살짝 떴는데, 이자야는 계속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있었던 모양이다. 그 눈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매혹적이였다. 마지막으로 입맞추고 떼어냈을 때는 숨을 고르기 바빴다.
……
…(중략)…
>>
"잘잤니, 히비야."
아침인사를 하자, 눈을 비비적거리면서 "안녕히 주무셨어요."하고 착실하게 인사하는 히비야. 내가 어렸을 때는 졸려서 고개만 끄덕였었는데. 그리고보니 내 남동생인 카스카는 '네.'하고 단답으로 끝냈던 것같다. 다시금 우리 형제가 얼마나 애교가 없었는지 실감하는 순간이다.
"아, 시즈. 깼어? 히비야도."
"네, 씻고와도 돼요?"
"물론이지."
히비야가 몇몇 도구를 들고 씻으러가는 동안 나는 이자야와 눈이 마주쳐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아, 얼굴 새빨개."
"신경꺼!"
"오늘은 거칠다, 시즈."
……어젯밤, 우습지도 않은 애칭으로 한번 나를 일컫고는 그것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시즈,시즈-."하고 불러오는데 내 기분은 썩 좋지않았다.
……. 애칭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그 빌어먹을 '시즈'라는 울림을 들을 때마다 어젯밤의 분위기가 떠올라서 민망해지는 것이 싫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시즈시즈, 마치 내 머리에 각인이라도 시키려는 양, 자꾸만 시즈시즈 거리는 것이 거슬렸다.
"왜 그렇게 뾰로통한거야, 시즈."
힉! 이자야는 내게 바짝 다가와 어제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내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평소대로 웃음을 피우면서 내 입에 가볍게 쪽, 하고는 "히비야가 다 씻은 모양이야." 하고 내게서 멀어졌다.
"대부, 씻으러가셔요~."
이자야가 나를 흘깃보고 씨익 웃는 걸보며 소름을 느꼈다. 그동안 너무 느슨했던게 아닐까. 그는 이러나저러나, 마을하나 정도 쉽게 박살내버리는 무서운 놈이였다.
경계를 잃어서야 말이 되지않는다. 내 구실은 '감시'였다.
*
오랜 노숙생활로 몸이 지쳤는지,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불구하고 목이 간질간질 거려왔다. 오늘은 작더라도 마을에 들려 쉬는 것이 옳을 것같다고 말하자, 이자야가 과잉반응으로 "민가라도 발견하면 양해를 구해야지!" 하고 외쳤다. 더불어 히비야가 울상인 표정으로 반응해와서 곤란했다.
히비야가 반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때는 이런 때였는데 어른인 내 쪽이 체력적으로 먼저 지쳐버리는 부분이였다. 체력이나 근력이라면 자신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인간한정인 정도였나 보다.
"꼴사납게, 민폐끼쳐서 미안해."
그렇게 말하자, 부자가 똑같은 얼굴로 무슨 소리냐고 해와서 난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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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밤이 될때까지도 마을은 커녕 민가조차도 발견하지 못해서 또 노숙이였는데, 이자야도 히비야도 걱정해와서 너무 미안했다. 정말 미안하단 말밖에 나오지않았다.
"…엇? 잠깐만, 시즈."
이자야가 난데없이 내게 얼굴을 가까이 해오길래 왜그럴까 생각했는데 자기 이마에 한 손, 내 이마에 한 손대고는 잠시 있다가 자기 이마에 올린 손을 히비야의 이마에 대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열을 잰 것이겠지.
"미열이지만, 열나는 것같다. 히비야보다 체온이 높아."
손대중이니까 진지할 필요없다고 하룻밤 자면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그 하룻밤이 고비라며 이자야가 역으로 화를 내와서 좀 의외다 싶었다.
"대부, 괜찮은거예요?"
히비야는 방금 이자야로부터 배운 행동인 손으로 열재어보기를 몇번이고 반복했다. 괜찮아, 괜찮아. 하고 타일렀지만 아무래도 이자야가 걱정하는 모습이 히비야에게 옮았는지, 히비야는 잠들기 전까지 내 손을 꼬옥 잡으면서 "아프시면 안돼요."하고 걱정해오는 것이다.
"이자야, 안 자?"
"하아."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이자야는 내 질문에 느닷없이 한숨쉬고는 "나는 야행성이야." 하고 답지않은 대답을 해왔다.
"망은 내가 볼테니 제발 안심하고 자 줘. 내가 너에게 할 수있는 게, 이게 다 인거 같으니까."
편하게 사르르 눈을 감는다. 내일 아침이면 부디 이들을 걱정시키지 않길 바란다.
*
다음 날 아침, 이상할 만큼이나 몸이 너무 가벼워서 밤새 망을 봐준 이자야에게 고맙다고 하니까, "뭐야, 멀쩡하잖아."하고 다행이라며 웃어보였다.
"안 피곤해?"
"3일정도는 밤새도 문제없어.사실 예전에는 몇날 며칠 안자도 괜찮았는데. 밤에 자는 건 그냥 습관이야."
원래는 야행성인데, 하면서 절규에 가까운 무언가를 말끝에 덧붙이며 이자야는 자신이 괜찮다고 말해왔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무언가가 내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했더니 히비야였다.
욘석 많이 걱정했구나. 조금 더 자게 놔둘까.
*
"왜 이 근처에는 마을이 없나요?"
히비야가 질문해왔다. 마지막으로 마을을 본 것이 상당히 오래되었으니 당연히 나올 말이였다.
"그건 말이야,"
"재해신, 요성, 풍수적 악축, 전쟁, 그리고 많은 요괴가 원인이지."
……. 최근 히비야가 내게만 물어와서 삐쳤는지, 냅다 대답을 가로채서 말해버린다. 훗. 허나 멀었구나, 오리하라 이자야여.
네 아들의 표정은 지금 혼란스럽다고.
"요컨대, 농사짓기가 어려운데다 요괴도 많아서 살기어려워 버린 땅이란 소리야."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는 히비야를 보며 승리감에 차오른다. 바라보고 있던 히비야가 갑자기 무언가 발견한 듯이 도도도 옆길로 빠져 나무 밑에 있는 풀을 꺾어든다.
이자야에게 받은 책을 어느정도 읽어서 그런지, 히비야는 종종 길가다말고 식물을 꺾었다. 꽃이 아니라 평범하게 풀같아보이는 것도 좋아하는 히비야의 눈에는 다 다르게 보이겠지. 이제는 이자야나 내가 아는 지식으로는 히비야의 식물에 대한 궁금증은 채워주지 못하겠지. 보자기를 건네주자 이것저것 모으는 것이(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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