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다고 에이치가 갑작스럽게 와타루를 호출했다. 자신에게 연락이 올 정도면 꽤 나쁘겠지. 와타루가 서둘러서 홍차부실로 향했지만, 실내에는 에이치가 없었다. 다만 정원에서 “후훗, 많이 놀랐어?” 하고 웃어보이는 에이치가 있을 뿐이었다.
“장난이 심하군요, 에이치. 이 히비키 와타루, 이 날씨에 이마에 땀이 흐를 정도로 놀랐으니까요.”
놀라운 세계와 새로운 것들은 언제나 좋아하지만, 이런 식은 땀만 등 뒤로 흐르는 놀라움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는 달랐다. 와타루는 불만을 내밀었지만, 에이치는 “그래?” 능청스레 웃어 보일 뿐이었다.
와타루는 문득 에이치 앞에 있는 테이블, 그 위에 놓인 모든 것들이 말끔하게 정리된 상태로 꺼내지기만 했다는 것을 눈치챈다.
“저를 놀라게 해주신 답례로, 차 한 잔은 어떠십니까?”
그거 반가운 소리인걸? 에이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찻잔을 잡아들었다. 와타루는, One, Two, Three! 마술사처럼 손가락을 움직였다. 찻주전자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오기도 전에 와타루는 찻주전자를 들어 에이치의 찻잔을 채워 나간다. 두 사람의 움직임은 마치 공연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기만 하다. 와타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이치는 찻잔을 입술에 가까이하고, 후우, 홍차의 향과 뜨거움을 입 안으로 넘겼다. 찬 공기 속에서 목구멍을 천천히 넘어가는 그 따뜻한 액체에 몸이 조금 더워진 것처럼 안정감을 되찾아간다.
“와타루가 끓인 홍차는 향도 맛도 풍부해서 좋아.”
에이치는 찻잔을 기품 있게 내려놓으며 웃어보였다. 와타루는 그에게 호평을 받는 것이 좋았다. 그렇기에 무척이나 기쁜 말이지만, 곧이어 "콜록콜록", 기침을 토하는 그에게 와타루는 마냥 홍차만을 권할 수는 없어 들어갈 것을 권했지만 오늘따라 통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황제가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는 광대라니 어딘가 이상하군요, 후후후. 무리하면서까지 고집을 부릴 때, 그는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다. 어서 눈치 채고 안으로 들여야 할 텐데.
“온도도 내 취향이고.”
학원 내의 아름다운 정원에 와타루와 에이치 단 둘. 오늘은 홍차부의 정기 활동이 있는 날도 아니었다. 그가 고집을 부리는 이유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와타루는 과하게 팔을 움직여 연기하듯 에이치 앞에 고개를 숙이며 말을 뱉어낸다. 요는 자신은 괜찮다는 거였다. 후후, 와타루는 재미있는 말을 참 잘해. 에이치는 말끝에 기침을 토했다. 이쯤되면 정말 실내로 들어가 주었으면 하는데, 에이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와타루는 바깥의 추위에 끄떡없는 거구나. 나도 와타루가 준 홍차 덕분에 몸 안이 따뜻하니 걱정할 필요 없어. 물론 내 안에 차들은 홍차가 식어버리면 정말로 추우니 들어가야겠지.”
에이치는 드물게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이어갔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걸까. 와타루는 이따금 에이치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운 그 기색을 두꺼운 가면 속으로 숨기는 간단한 것도 어째 그의 앞에서는 신경써야할 일이었다.
“와타루가 식혀 볼래?”
그걸 원하셨습니까.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기쁜 마음이 손가락 끝에서부터 감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귀여운 어리광이었다. 이 사내에게서 한 시도 눈을 떼어놓을 수 없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광대에 불과한 나라는 자는 어쩌자고 이 황제를, 정정, 이 사내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에이치는 잔에 남은 것을 마저 삼키고는 와타루를 기다렸다. 찻잔이 받침대에 우아하게 내려놓이고, 와타루는 에이치의 곱게 빚어진 사기 마냥, 아니 백자 같다는 표현은 반은 옳았다. 에이치는 유약을 잘 펴 바른 자기의 표면마냥 부드러웠지만, 깨지기 쉬운 것만큼은 분명했다. 여간 백자처럼 고운 에이치의 뺨을 눈으로 살폈다. 부디 그가 아픈 소리를 내며 깨져버리지 않기를.
“광대 상대로 너무 짓궂은 거 아닙니까, 에이치.”
사과대신 에이치는 고개를 올려 좋은 방향에서 와타루를 올려다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꿈길을 걷는 것같이 마냥 사랑스러웠다.
겨울공기는 차고 메말랐는데, 숨결이 닿을 때만큼은 축축하고 녹진한 것들이 뜨겁게 입가에 달라붙곤 한다. 와타루는 상반신을 숙인다. 그리고 앉아있는 에이치의 웃어 보이는 입가에 입술을 가까이에. 에이치는 와타루의 땋은 머리카락이 자신의 손에 떨어지는 것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깨지지 않게 소중한 사람의 뺨을 조심스레 잡고 그의 입 안에 녹아 있을 홍차의 향과 뜨거움을 먹어가며.
만족하셨을까요, 황제 폐하. 오늘은 어리광을 부리시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군요. 괜찮다면 실내에서 맞이해드리고 싶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