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그는 색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신 학년, 신학기. 교문 앞을 통과하는 수많은 학생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붉은 색의 넥타이를 목에 두른 올해의 1학년들을, 아니, 그 중에서 찾을 것도 없었다. 나는 그가 교문을 통과하는 순간 시선을 빼앗겼다. "아…." 하고 얼빠진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며 나는 고개로 그를 쫓았다.
훤칠한 키, 준수한 외모. 솔직히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고개만으로 그를 쫓기 어려워질 쯤에는 발이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타닥, 타닥, 자신이 달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내 손이 그의 팔을 잡은 후였다.
붙잡은 그는 나와 키가 비슷했다. 그가 1학년인지 어떤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의 목에 둘러진 내가 가장 아껴 마지않는 색, 붉은 색이 둘러져 있었다. 지정 넥타이에 센스를 요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는 적색보다야 녹색이 어울릴 텐데.
"…뭡니까?"
당연히 차가운 반응이 돌아왔다. 그 목소리에 정신이 들어서 굳게 웃어 보이고 나의 소개와 더불어 농구부의 입부 권유를 했다. 그는 당황해서 매고 있는 가방의 끈을 양 손으로 꼭 쥐었다. 그 행동만으로 그가 보이는 것과 달리, 여린 사람이구나, 알 수 있었다. 강요하지 않는 선에서 권유만을 할 생각이었지만, 글쎄. 그가 이때의 내 행동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첫 만남은 그랬다. 그는 내 손에 이끌려 입부했다. 룰을 영 모르는 초보인 그였다.
그는 운동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책임감이 그리 강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거기서 끝날 인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코트 바깥에서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공을 튕기는 것만큼은 제법 익숙해졌는지 꽤 그럴싸한 모습이었다. 키가 큰 그가ㅡ아직 1학년이고, 그의 말을 들어보면 아직도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으니, 아마 이대로 계속 연습에만 나와 준다면 곧 있잖아 큰 전력이 될 그는 공을 튕기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 좋은 모습이 되어있었다. 초보인데, 꽤나 운동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반쯤 넋을 다른 곳에 두며 한참을 쳐다보았더니 자연스레 눈이 마주쳤다. 그는 눈을 이리저리 피하다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내 눈치를 살폈다. 아, 그렇군. 부장인 내가 쭉 지켜보고 있었으면 그의 입장에선 그게 좋은 기분은 아니었겠지.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그에게 말을 건넸다.
"공하고도 꽤 익숙해졌구나."
"매일 이것만 시키는데, 못 하는 게 이상한 거죠…."
그걸 못 하는 사람도 있다만, 하는 말은 집어넣고 요령을 좀 더 보태주자 "이렇게 말임까?" 퉁퉁, 아까보다 묵직한 소리로 체육관 바닥을 울렸다.
"음, 타카미네. 그리고 보니 유닛은 어떻게, 들어갔나?"
타카미네는 대답대신 깊게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 와중에도 공을 튕기고 있다니, 장하구나!
"아직 정하지 않았다면, 유성대는 어때?"
"…음, 유성대면… 부장이 들어가 있는 유닛이죠."
타카미네는 이 때 내 권유를 승낙하지 않았다. 내가 소속한 유성대를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는 중, 타카미네는 시선을 멀리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무엇에 놀랐는지 공을 튕기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튕겨나가는 공을 쳐다보는지 시선이 한 층 더 멀어진다.
그 모습에 나는 무엇인가 불안해져서 다급히 말을 이었다.
"응? 어때, 타카미네. 내 이야기."
"…웃. 부장, 저… 가볼게요."
말은 다 전해지지 않았고 타카미네는 도망치듯, 아니 무언가를 쫓아가듯 내 앞을 지나쳐 탈의실로 향했다.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잠시간을 문만 쳐다보고 있자, 이사라와 함께 들어온 아케호시가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타카밍, 울었다고."
그랬군. 그렇게 싫었군.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장소에선 그저 그랬겠지 하고 납득했지만, 집에 돌아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생각해보면 그게 울 만큼 싫은 일은 아니었을 거란 확신이 찾아왔다.
나는 다음 날 아침부터 운 좋게 타카미네를 찾아내서 말을 걸었다. 싫은 기색이었지만 특별히 더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껴안은 그의 목덜미에서부터 나는 비누 냄새는 보드라웠다.
뭐 정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나는 초능력자도, 탐정도 아니니 잘 알 수 없었다. 그저, 타카미네가 유성대에 입부 의사를 표했을 때 날아갈 듯 기뻤다.
*
올해의 유성대, 첫 라이브를 마쳤을 때였다. 소규모이긴 하지만 분위기도 좋았고 후에 사인을 받으러,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들도 있었다.
"어땠어?"
나는 곁에서 타월로 땀을 닦고 있는 타카미네에게 물어봤다.
"이래저래…."
힘들었다고 이야기를 하려나. 그러나 그는 그런 불만을 한 김 삼키기라도 하듯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나를 바라보며 웃어보였다.
"즐거웠어요."
순간 말을 잃는다.
마음을 어디에 비유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 처음으로 색을 눈에 담았던 그 시절에 겨우 빗대어보려고 한다. 그 TV안에서 히어로가 무슨 마법을 걸었기에 어린 내가 흑백의 세계에서 손목을 당겨져 알록달록한 세상에 올 수 있었을까. 그 작품이 무엇인지도 기억나고, 그 화가 무슨 화였으며, 어느 히어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하는데. 아무리 돌려봐도 내가 무엇에 그리 감동을 먹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방금 타카미네가 한 "즐거웠어요."라는 말의 어디에서 그리 감동을 받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알 수는 없었고, 그걸 생각하고자 할 때는 이미 반해있었다.
*
남이 고백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급해져서 고백하고, 그리고 보기 좋게 차였다. 결코 신경 쓰지 않음을 연기하고, 심지어 고맙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정적이 무서운 탓에 부끄러운 과거 이야기까지 그에게 내뱉고 물드는 내 얼굴이 마치 노을 같을 것이다. 타카미네는 노을 색을 모르니, 그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 사람과 행복해지면, 색이 보일 거라고 믿고 있어서. "
그런 내게 그렇게 부드럽고 귀여운 신념을 말해주는 그가 또 그리 사랑스러울 리가 없었다.
아아. 타카미네. 나는 네 사랑을 응원할게. 네 행복을 바랄게.
손을 잡아 내가 네게 끌리듯 너를 내 품으로 이끌고 싶다. 뺨을 쓰다듬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네게 반해있다고 다시 한 번 알려주고 싶었다. 다만 그래서는 안 된다.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타카미네에게 행복을 안겨다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니지. 거기는 확실하게 잘라둬야 하는 부분이었다. 실망하지 않았냐면 그렇다고 말할 수 없고, 가슴이야 쓰렸다. 분명 아까 당한 것이 실연일 텐데, 지금에야 실감하고 있었다.
*
졸업식 날, 나는 마지막까지 선배로 남을 수 있었던 점을 안도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만 그렇고, 그가 생각하기엔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내 최선이었다.
너는 푸른 하늘도 어울리고, 노랗게 해에 서서히 익어가는 하늘도 어울리고, 이윽고 불에 타버리는 석양도 어울리며, 심지어 그 검은 밤도 어울리는데. 그런 너는 어째서 색을 볼 수 없을까.
아니, 너는 색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언젠가 네 그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에 무슨 색이 가장 먼저 담길지, 아마 그게 붉은 색이라면 덧없이 기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너의 행복을 응원하고, 응원하고. 사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감정은 어딘가에서 꺾였기에, 내게 남은 건, 너의 행복을 바라는 좋은 선배라는 자리뿐이다.
타카미네 미도리는 아직 색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직이다.
슬퍼할 수는 있겠으나, 거기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나는, 나는…….
아니,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더는 말할 것도 없다. 그저 내가 너에게 반하고 너에게는 잊힐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