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케이토를 향해 고개를 돌려 웃어보였지만 케이토는 고개를 숙인 채 사과를 깎느라 바쁠 뿐이었다.
"뭣 하러."
다만 케이토는 단호했지만,
"지금은 바쁘지도 않으니까 내 쓸데없는 이야기라도 들어줘."
또, 다만 나는 집요하게 굴어보았다. 그에 케이토는 탐탁찮은 듯 했지만 침묵으로 수긍해주었다.
"나랑 케이토 입장이 반대인 꿈을 꿨어."
"쓸데없군."
그렇지만 들어주기로 했잖아, 나는 말을 그저 그저 이어나갔다.
내가 건강하고, 네가 아파 누워있었어. 그 이외에는 같았을 거야. 다만 네가 내게 해주던 일을 내가 하고 있었어. 네게 보여줄 노트를 작성하고, 네 몫의 서류를 처리하고, 네 병문안도 갔어. 네가 지금 내게 온 것처럼 말이야.
침대 위에 올려둔 접시에 사과조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잘린 단면이, 에이치는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후후, 쓸데없다고 했으면서 흥미를 보여주는구나?"
"나와 입씨름이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관둬라."
으응. 케이토와 입씨름을 하고 싶진 않으니까.
"꿈에서 깼을 때…. 누워있는 것이 나라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어."
케이토는 어디 더 말해보라는 듯이 시큰둥해한다.
"후후, 맞아. 그냥 꿈이었어. 그 마지막은 케이토를 만나러갔더니, 네가 날 내쫓아버렸어."
"꿈에서도 어지간히 필요 없는 말을 하고 다녔나보군."
나는 할 말이 없어져서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빠르게도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태양이 사라진 밤, 아니, 밤에 먹히는 태양. 그러는 동안 케이토가 내 허벅지 위에 접시를 올려주었다.
"케이토를 도와주고 싶었어."
케이토는 지금 내 말에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흘깃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표정을 짓고 있진 않았다.
"네게 내가 지켜졌던 것처럼, 내가 너를 지키고 싶었다."
멋지네. 내가 한 생각이지만, 로맨스에서나 나올 법한 멋들어진 문구였다. 다만 나는 너처럼 올곧은 성근에서 흘러나오는 호의가 아니라, 진득한 감정이 담긴 상자를 열자 퀴퀴한 내로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그런 호의였지. 그렇지. 어쩌면 병든 너는 그걸 잘 알았을지도 모르겠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참동안 말이 없는 나를 대신해서 케이토가 먼저 입을 열어주었다. 케이토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아 그저 그저 계속 창문만 바라본다.
"나라도 그랬겠지."
위로해주는 거니? 상냥도 하지, 케이토. 하지만 그런 위로는 답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너는 나를 잘 알지만, 또 나를 잘 모르지 않니.
"네가 말하듯, 나도 널 과보호해왔으니까. 당사자에겐 답답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옆에서는 그게 최선으로 느껴지곤 해. 그러니 어떤 방식이든 날 도우려고 했다면, 그건 에이치 네가 나쁜 게 아니지."
"듣는 이가 기뻐지는 말을 해주는구나. 케이토는 언제부터 귀를 그렇게 잘 간질였어? 내가 아는 너는 좀 더,"
"입씨름이 하고 싶다면야 사양하지 않겠다."
미간을 좁히는 너를 더 이상 놀릴 수 없는 나는 그저 접시 위의 사과를 집어 들어 입으로 옮길 뿐이었다.
"에이치. 네가 말하는 것들이 단편적일 뿐이어서 네 기분이 왜 그리 나쁜지도 잘 모르겠다만."
"나빠 보였어? 그저 아플 뿐일지도 몰라."
그렇게 무섭게 노려보지 말아줘, 케이토. 그래, 맞아. 몸 상태는 좋아. 오늘정도는 링거를 떼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니까.
"화는 낼지 모르겠다만, 네가 나쁘다고 하지는 않는다."
화는 내는구나? 하고 물을 수 없을 정도로 네 녹황색 눈동자가 근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구나. 너는 나쁘다고 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조심스럽게 고해볼게. 잠깐 시간이 필요하니까. 케이토는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난 케이토가 아팠으면 했을 뿐일지도 몰라. 그리고 내가 건강하고…."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지만 네가 병상에 오래 있었으니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나 대신 네가 아팠으면 했던 건 아냐. …네 은인이고 싶었어."
"나 참."
그렇게 말하니 혀를 찰 듯이 너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해서 얻고 싶은 거라도 있었나?"
아픈 곳을 잘도 찾아내는구나, 케이토.
"관계…개선이라든지?"
물어보길 잘 했군. 또 뭐가 문제였어. 그리 말하며 너는 반쯤 감은,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시선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져서 다음에 던질 말은 무척 가벼워지고야 만다. 그래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아는데, 오히려 그 가벼움으로 너를 곤혹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말하고 나면 너는 뭐라고 할까. 바보 같다는 눈으로 쳐다볼지도 모르고, 꿈에서처럼 내게서 벗어나려 할지도 모르겠어. 이번에는 내가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도망갈지도 모르겠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게 그리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란다. 그것만큼은 아플 정도로 잘 알고 있는 내가, 그래, 무겁게 이야기해봐야 좋을 것이 없다면 차라리 가볍게 이야기하고 너의 곤란한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고 싶다.
"음, 케이토에게 문제랄 건 없는데….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게 문제려나? 관계는 연인관계로 나아가고 싶다, 거나?"
네가 앉아있던 철제의자가 덜커덩 움직이고, 네가 일어난다. 도망치는 네 팔에는, 나와는 달리 주사바늘 자국 없이 말끔하다. 화가 나서 도망치는 걸까, 아니면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싫어 도망치는 걸까. 나는 또 꿈에서처럼 너를 몰아넣고 사냥하려고 했었나. 아냐, 언제나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아, 케이토! 잠시만, 가방 두고 갔어!"
문고리를 잡아 열려는 너를 불러 세우고, 멈춘 네가 호흡을 흩트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면, 그러면,
"…케이토. 저기, …응? 울어?"
"…네놈은 병세로 시력마저 나빠졌나?"
그렇지? 미안. 얼굴을 가리려하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지. 그런데 케이토, 네 오른손은 문고리를 잡고 있는데, 네 왼손은 네 얼굴을 가리고 있고, 나는 어디다가 가방을 쥐어주면 좋을까?
조금 무거운 숨소리와 함께 네가 내가 건넨 가방을 들 때, 나는 네 뺨이, 귀가, 상당히 붉은 것을 봐버리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