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무척이나 홀가분해서 혹시 내가 간밤에 죽어버린 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분명 병실의 침대에서 잠들었을 텐데, 내가 깨어난 곳은 내 방의 침대였다. 내가 아는 내 방보다 조금 더 생활감이 있는 그곳은, 우습지만 내가 아는 내 방보다 훨씬 내 채취가 묻어있었다.
꿈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다리는 평소보다 가벼웠고 머리는 어지러움을 호소하지도 않았다. 내 손목에는 주사바늘자국 대신 살점이 조금 더 붙어 있었고, 내가 아는 나 자신보다 혈색이 건강했다. 하지만 거울 앞에 서보니 영락없는 텐쇼인 에이치였다.
아무도 내 건강을 걱정하지 않고 학원으로 보내주었다. 아침부터 조금 시끄러운 클래스에서 나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있을 네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네 자리가 비어있었다. 나는 내 기억에 남아있는 네 자리의 서랍 안을 살폈다. 하스미 케이토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걸로 보아 다른 사람의 자리는 아니었다.
“하스미는 아직도 병원인가?”
건강하고 명랑한 클래스메이트가 그렇게 물었다. 나도 모르는데…. 그리 답을 하는 것이 논리적일 테지만, 입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다고 답을 하고 만다. 그야 꿈이니 그렇겠지.
“오늘 오후에는 퇴원한댔어.”
그 역시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말하고 나서야, 아, 케이토가 병원에 있구나, 오늘 오후에 퇴원하는구나,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업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즐겁고 이따금 곤혹스러웠지만, (갑자기 야구공이 창문을 깨고 날아오는 건, 층수를 생각했을 때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일 텐데. 웃으면서 나는 꿈임을 한 번 더 확신했다.) 나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학생회실로 향했다. 익숙한 멤버들이 나를 반겨주었고, 역시나 네 자리엔 네가 없었다.
“회장이 과로하지 말라고 배려도 해줬는데 기어이 무리를 해서는!”
귀여운 토리가 뺨에 공기를 집어넣고 툴툴거렸다.
어서 이 꿈 세계의 케이토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빠르게 도장을 찍어 내려갔다. 도장을 아무리 찍고 찍어도 시간은 좀처럼 흘러가주질 않았다. 시계가 마치 멎어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서류는 확실하게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불만 없이 도장을 찍어 내렸다. 이렇게 많이 일 해본 것도 간만이었다. 언제나 네가 간추려주는 적은 량의 서류를 승인하는 것이 내 일이었기에.
말하지도 않았는데 기사는 케이토의 집 앞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높디높은 돌계단을 보았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너를 만나기 위한 시련쯤이나 되었던 것이, 내 다리가 가볍게 계단들을 밟아 올라갔다.
그러면 어김없이 어린 시절 바라보던 풍경이 거기에 있었다.
자아, 그럼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더라. 기억이 내 머리 위에 뜨기 전에 발이 먼저 움직였다. 너는 아마도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을 것만 같구나. 나는 문을 하나하나 열면서 네게 향한다. 열고, 또 열고, 또 어디 깊숙한 곳에 네가 있을 테다. 케이토. 어디 있어. 이 행위를 나는 마치 사냥감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것만 같다고 느낀다. 이내 마지막으로 열어낸 문 안에는 네가 사랑스럽게도 가장 약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에이치.”
내 방문을 알고 있었다는 듯, 병든 너는 고개만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케이토.”
그런 너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문을 닫고 누워있는 네 곁에 앉았다. 네 머리 위에 올라간 수건은 이미 바짝 말라 있었기에, 나는 준비된 대야에 수건을 푹 담가 적셨다. 쭉 짜내고 차곡차곡 개어 네 이마 위에 올려놓으면 너는 “하…아.” 진정의 의미인지 한숨을 쉬는구나.
차분히 그런 너를 바라본다. 변하지 않는 풍경인데 질리질 않았다. 네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동안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운동마저도 사랑스럽단다. 케이토. 아아, 지금이라면 내가 할 수 없는 말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천천히 입을 떼고 너에게 고백하며.
“케이토, 사랑해.”
그 순간 이 세계가 멎은 것만 같았다.
“병원, 좋은 곳으로 옮기자. 나을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전부 책임질게.”
케이토는 반응이 없었지만, 나는 말을 이었다. 가장, 가장 중요한 말을.
“너까지도.”
그러자 케이토는 내게 말한다.
“에이치. 일어나서 뒤로 돌아서.”
그 명령과 동시에 케이토는 언제 아팠냐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무슨 이유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일어나서 뒤로 돌아섰다. 그의 명령…아니, 부탁처럼.
“아.”
케이토가 내 등을 팍 하고 밀쳤다. 나는 문밖으로 떨어졌고, 당연하게 케이토가 있던 방문은 닫혔다.
“케이토.”
당연히 케이토로부터 대답은 없었다.
“돌아가. 너와 대화하고 싶지 않아.”
“케이토, 케이토. 미안해. 내가 심술궂었지. 나는 네 은인이고 싶었어. 은인이고 싶었어…. 너를 병들게 하고 싶었어. 친구의 관계를 부수려고 해서 미안. 미안해…. 내 욕심이었으니까.”
그러면 방 안에서 후우, 하고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알아. 일단, 돌아가.”
그 말만을 선명하게 들은 채로 나는 눈을 떴다.
병원의 천장은 하얗고, 점과 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화려할 리가 없었다. 창문을 가리는 커튼과 내 팔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가지 같은 링거들은 참으로 화려하다. 몸은 한참 무겁다. 이 무거움과 아픔이 내가 살아있는 증거였다. 내가 병든 세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