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지 않는다면 조명을 이용하지 않아도 방 안은 충분히 밝을터였다.
그러나 서현의 지금은 마치 새까만 밤과 같았다. 조명을 켜지 않으면,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지팡이도 쥐지 않은 장님과 같다.
그렇다면 조명을 켜둔 채로 생활하면 될 것이다. 조명을 켜는데에 있어 이사카의 생명에 어떤 지장도 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안타깝게도, 서현은 그러지를 못했다.
처음에는 안경을 썼다. 저멀리, 일반인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잘 보던 자신이 설마 안경으로 보조를 받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루스킨이나 빼또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수가 높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렌즈는 바깥쪽에서 보아도 확연할 정도로 도수가 높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안경을 써도 푹푹 떨어지는 시력은 막을 수가 없었다.
루스킨이나 빼또쥬에게도 별로 알게하고 싶지 않았으니, 한세건에게는 더욱 심했다. 서현은 한세건과 만날 일이 있을 때는 절대 안경을 쓰지 않았다. 생명을 갉아먹음에도 굳이 방 안의 조명을 키고 있었다. 형광등을 연결한 전선이 타들어갔다.
"너 이게 뭐야."
"뭐긴. 안경이잖아."
"이게 왜 네 가방에 들어가있는지 묻잖아."
"패션이지."
"이렇게 두꺼운 알가지고 잘도 패션이라 하는군."
"안경 맞추고 싶은데 눈이 얼마나 나빠야 주는지 몰라서."
"하."
한세건은 서현의 안경을 바닥에 떨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밟는다.
"나쁜 놈아. 돈이 얼만데."
울컥한 심정을 더 토해내고 싶은데, 가격 이외의 어떤 것에도 더이상 트집잡을 수 없었다.
이윽고 그리 멀지 않은 날에 서현이 달빛조차 들어와주지 않는 밤을 맞이하고, 조명을 키지 않고서는 무섭고 두려울 때야, 세건은 이때 일을 후회, 아니 그저 돌이켜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