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린의 목 뒤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목욕을 하다가, 그가 발견해준 것이다.
함께할 이름이 있다는 건 멋진 거란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이름이 뭐냐고 물었지만 짓궂게도 아버지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떻게든 보고 싶어서 거울앞에 서서 손거울로 요리조리 움직였지만, 아직 작은 몸으로는 보기 어려웠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친구가 생겼을 때, 그래, 혁진에게 읽어달라고 했다.
"세건이래."
"남자이름 아냐? 으으."
흔한 이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에 딱 하나 있을법한 이름도 아니었다. 서린은 또 그렇게 몇년을 이름에 대해 잊고 지냈다.
어느 날, 배달하는 신문 일면에 그 이름이 나타날 때까지.
에이, 설마.
소름이 쫙 돋았다. 그가 내 운명의 상대라면, 아이고, 평생을 총기 닦으며 보내야겠네. 물론 진지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가 아니라는 생각을 더 많이하며, 아니, 나는 테러범 한세건과 만날 일 조차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또 그렇게 한동안을 보냈다.
뒷목이 간지러웠다.
세건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서린은 자신의 뒷목에 그의 이름이 있는걸 무척이나 기뻐했다. 작고 조밀하게 새겨진 터라 확인하기 위해 목을 들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테고 세건 역시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다만 세건과 함께 할때 심장보다 더 뜨거울 듯 달아오르는 부위가, 거기가 이름이 있는 곳이라고 서린은 잘 알고 있었다.
세건 형도 혹시 내 이름을 가지고 있진 않을까?
연심에 그와 스파링을 할 때 찾아보다가 뭔 짓하냐며 몇 번이나 척추가 접혔고, 그가 목욕을 할 때 의도적으로 문을 열었다가 다리를 꺾였다.
이름을 확인하는건 포기했다. 처음에는 세건이 자신의 이름때문에 의도적으로 접근한게 아닐까, 하며 기대도 해보았지만 그건 아닌 것같다.
세건에게 자신의 이름이 없어도 좋았다.
자신의 목에 쓰인 이름이 세건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내 운명의 상대.
표정관리가 안 되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숨을 돌렸다.
창월이 비쳤다.
서린은 세건에게 접촉하면서 느꼈다. 목 뒤가 뜨겁게 달아오르거나 하지 않았다.
"저 뜬금없는 부탁인데요."
"뭔데?"
마틴은 시큰둥했다. 어지간히 서린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 목 뒤에 혹시 뭔가... 있진 않나요?"
심통한 표정이었지만 마틴은 서린의 목에 눈을 가까이 했다.
"...없어."
자신의 손이 습관적으로 뒷목으로 향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서린이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