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택이란 자가 홀연 사라진지 200년하고도 꽤 지났습니다만. 중국에서 크게 소란이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혹여 다들 백택을 잊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다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라 그에 대한 걱정은 없겠군요. 그렇다면 별 소란이 될 것 없이 언제나 있는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 녀석의 수명감은 어지간한 생명에 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꽤 오래 살았으니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아니, 정정하지요. 그 녀석이 질리도록 사랑하는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만큼 이상한 것도 없을 겁니다.
처음에야 어디에서 또 흥청망청 놀고 있는 게 아니겠냐는 이들도, 별일 없이 곧 돌아올 거라 말한 이들도 이제는 백택에 대해서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듯합니다. 슬픈 눈을 하고 말이지요. 당신네들 얼굴에서 확연히 나타나는 불안감이 썩 보기 좋지는 않았습니다. 저 말입니까? 그토록 싫어하던 녀석이 사라져서 나쁠 건 없습니다만, 제 손으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점이나 지옥에 떨어뜨리지 못했다는 게 원통하군요.
제가 갑작스레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현세에 내려갔을 때 참으로 흥미로운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백택과 꼭 닮았습니다만, 백택은 아니었습니다. 만물을 알지 못했고, 대낮부터 술에 빠져있거나, 여자에 미친 이도 아니었습니다. 전당포에서 오래된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는 녀석…그가 구석에 다다랐을 때 다짜고짜 이야기가 하고 싶다고 제 이마의 뿔을 보여주자 흥미를 가지며 흔쾌히 승낙한 괴짜이기도 합니다.
그는 계산을 마치자 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처음 보는 이를 집안에 들이는 그는 자신을 '시라사와'라고 소개했습니다. 그의 집은 다소 큼큼한 냄새가 났는데 지저분한 탓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오래된 책들의 냄새지요. 그는 조금 오래된 문헌 따위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옛 사람들의 흔적을 연구하는 것입니다만, 그와 별개로 요괴에 상당히 흥미를 가진 듯합니다. 시라사와는 신이 나서 저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대며 들은 것을 곧바로 써내려 갑니다. 지옥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곤란하듯이 하하, 웃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는 겁니다.
“정말 있구나…….”
그 선량한 얼굴로도 찔리는 게 영 없지는 않은 모양인지. 짓는 표정은 마치 제가 잘 알고 있는 백택의 그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느 지옥에 떨어질 거라 생각해?”
“……글쎄요. 살살처?”
“어떤 곳인데?”
그 곳에 관한 이야기를 마쳤을 때 그는 자신과는 전혀 연이 없다면서 손을 저었습니다. 그러기에 이번엔 도원향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물론 보통사람 이상으로 흥미로워 했습니다. 한방약국이나 거기 있는 신수의 이야기나, 모모타로의 이야기나. 하지만 지옥의 이야기를 할 때보다 흥이 식은 표정으로 기록만 할 뿐 더 이상의 것은 묻지 않았습니다. 마치 무언가 기피하는 듯이.
“날이 어두워졌으므로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저기, 자고 가도,”
“바쁜 몸이라. 이만 가보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현관을 열자 비가 제법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장마의 시작이 분명했으므로 이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곤란한 터라 턱을 잡고 고개를 기울이던 참에.
“우산 줄 테니 쓰고 가.”
그는 제 손에 삼단우산을 쥐어주고 현관에서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습니다. 우산을 펼치자 흰 바탕에 퍼진 복사꽃이 마치 양산의 디자인은 무언가 아득한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데 충분했습니다. 시라사와의 표정을 살피면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전혀 아쉽지 않은가 하면 그렇진 않았습니다. 시라사와는 재미있는 사내였습니다. 그 아쉬움이 발목을 붙잡지 않도록 먼저 떨쳐내고 몇 발자국인가 내딛자 등 뒤에서 고함소리가 기분 나쁘지 않게 귀를 끌어안아오더랍니다.
“호오즈키!”
놀라움에 등을 돌려 다시금 그를 바라보자, 답을 확신하지 못하는 풋내기와 같은 모습의 사내가 제가 잘 아는 사내와 겹쳐지는 것이지요.
고개만 끄덕이고 지옥으로 곧장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때까지는 몰랐습니다만. 제가 마주하고 있던, 백택과 꼭 닮은 시라사와의 얼굴은 참 아름답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지금에야 드는 군요. 길어야 100년, 짧은 생입니다. 그가 들은 지옥의 이야기와 실제로 마주하는데 80년도 채 걸리지 않을 겁니다. 덧없다, 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화무십일홍과 같은 것일지. 굳이 대자면 그는 꽃이라기보다는 나비에 가깝겠지요.
예? 아아, 그의 사후의 처리. 글쎄요. 제가 아무리 그를 마음에 들어한다하더라도 죗값은 확실히 치루며 이윽고 대왕의 앞에 서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그가 혹여나 제 일을 기억하고 우산이라는 빚을 지운 것까지 기억한다면. 그리고 자신 있게 제 이름을 부른다고 하면 아무리 귀신인 저라도 선처할 마음이 영 아니 드는 건 힘들겠지요.
*
시라사와의 이름이 아주 잠깐 명부에 올랐다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그의 재판을 기대하고 있던 저로서는 아쉬운 일입니다만, 그건 필히 어떤 이유가 있는 것임에 분명합니다. 혹시나 하여 간만에 도원향에 들렸습니다. 약국까지 갈 것도 없이, 현세와 지옥과 그리고 천국을 가르는 문을 지나 조금 걷자, 그날따라 흰 하늘 아래 복사꽃이 만개한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덧없는 꿈을 꾸는 신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제가 잘 아는 그 녀석임에 분명합니다만.
한 번은 모두의 원망을 담아 후려패줄까, 싶었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의 몫이므로 함부로 빼앗지는 아니하였습니다. 그 길로 발을 돌려 지옥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가 만약 제 이름을 자신 있게 불러준다면, 그에게 선처하여 지금에야말로 다정히 대해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터입니다. -手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