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백
현패러
카가치 - 호오즈키
시라사와 - 백택
카가시라, 鬼白
날조설정. 아무래도 좋으신 분만.
<사족 그 1>
시라사와는 좋은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웃음도 많고 상냥한데다가 페미니스트로 여자아이들에게 인기 있었다. 그녀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그를 싫어해보려고 해도 보통은 그 넓은 아량이나 혹은 악의에 둔감한 성격 탓에 짓궂은 행동을 관두는 경우가 대다수다. 오히려 그는 그런 이들과 친해지고는 한다. 너무 상냥해서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에 그 귀찮음이 싫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거리두기를 잘한다. 공간을 침범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일부러 다가가지 않는다. 싫어할 수가 없다. 이러하듯 보통 사람은 그를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카가치는 달랐다.
시라사와가 눈에 거슬려도 한참 거슬렸다. 이유? 이유라도 생긴다면 편하게 싫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앞서 말했듯이 싫어할 이유가 아니 싫어할 수 있는 이유가 없었다.
*
초등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소문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멀리서 몇 번인가 본 적도 있었다. 감상은 ‘아, 예쁜 사람이다.’였다. 그야 지금 생각해보면 같은 공간에 있지도 않았고 다른 반이었으니 가능했던 감상이었던 것이다. 그를 몰랐기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 카가치는 시라사와와 같은 반을 배정받았다. 원래라면 같은 반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었을 터였다. 선생들과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카가치와 시라사와는 같은 반이 되었다.
키가 비슷했다. 그런 이유로 서로의 옆자리는 서로가 채우게 되었다. 시라사와의 주변은 항상 시끄러웠기 때문에 카가치는 자신이 곧 시라사와와 짝인 것을 불평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 반대로 선을 튀어나오면 자신의 물건이니 뭐니 하는 시시한 장난조차 없었다. 수업시간에 말을 걸어오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있어봐야 필요한 것뿐이었다. 카가치는 시라사와의 옆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쉬는 시간에는 당연히 그 주변이 시끄러워졌지만, 그 때는 자신이 자리를 잠시 비우면 되는 일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여름 방학식이었다.
“카가치. 안색이 안 좋아.”
조례시간, 시라사와는 다정하게 물어왔다. 그가 옆으로 고개를 숙이자 살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만이 책상을 한층 더 가까이 했다.
“아니오. 괜찮습니다.”
“양호실이라도 갈래? 같이 가줄게.”
시라사와는 정말 카가치가 걱정되었는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카가치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물론 평소라면 고마워할 일이겠지만 그 날은 아프기보다는 피곤한 몸에 습기가 그득한 공기가 영 기분 나쁜 일일 뿐이었다. 게다가 평소보다 빨리 마칠 텐데 양호실이라니 여간 귀찮았다.
“움직이기 힘들어? 그런 거면 내가 대신 약이라도 받아올게.”
금방이라도 양호실에 가겠다는 듯이 시라사와가 의자를 뒤로 밀었다. 그런 소리가 났다.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그럼 일찍 집에 가는 게 좋을까? 내가 선생님께….”
“정말 괜찮습니다. 말하기 귀찮아요. 말 걸지 말아주시겠습니까.”
“응, 알겠어. 필요하면 말해.”
신경질적일 필요는 없었는데.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끝까지 상냥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카가치는 한숨을 내쉬고는 책상에 뺨을 가져다대고 엎드렸다. 금방 자신이 뱉는 숨으로 뜨거워질 표면이었지만 당장은 차갑고 편했다.
성적표(그래봤자 실질적인 결과보다야 좋은 말로 적당히 평가해주는 수준이었다. 어디까지나 대상은 초등학생이니까.)까지 받고 학교가 마쳤을 때는 비가 쏟아졌다. 아침부터의 기분나쁜 습기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카가치는 우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부모님께 전화를 하려 하였으나 두 분 모두 회사일이시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에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침부터 그렇게 꿉꿉한 습기가 온몸을 뱀 마냥 조이고 있었다. 금방 그치지는 않을 테다. 어떻게 한다. 생각할 것도 없이 이대로 집까지 걸어가는 게 좋겠지요. 집까지는 20분 거리니 그렇게 멀지 않다. 억수같이 쏟아져 내린다는 사실 이외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카가치.”
한 학기동안 익숙해진 목소리가 자신을 불렀다. 뒤를 돌아보면 시라사와가 방긋 웃고 있었다.
“같이 쓸까?”
시라사와는 민트색 우산을 허공에 폈다.
“아뇨.”
“에이, 정말 그렇게 사양할 거 없어. 육교까지 같은 길인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그야 돌아가는 길에 자주 카가치를 봤으니까. 아, 카가치는 수다 떠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말은 안 걸었어….”
별로 묻지 않았습니다.
시라사와는 어서 빨리 들어오라고 말하듯 카가치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럼 육교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응!”
가까이 서보니 카가치보다 시라사와 쪽이 조금 더 키가 컸다. 도토리 키재기 수준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랬다.
둘이서 한 우산은 초등학생의 체구여도 어깨나 신발주머니, 가방 뒷면이 젖을 게 뻔했지만 시라사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카가치랑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거 처음인 것 같아.”
“그렇습니까?”
카가치 입장에선 시라사와와 대화한다기보다는 우산을 같이 쓰는 대가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정도였지만. 시라사와는 정말 즐거워보였다. 혼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같이 돌아가자고 하면 돌아갈 친구들이야 얼마든지 있을 텐데 왜 하필 오늘은 자신이었는지 카가치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아직 초등학생 3학년이니까.
“?”
걷고 있는 동안 카가치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이쪽 길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쪽 길 아니야?”
“예. 시라사와는 저쪽이지요.”
카가치는 육교의 반대편을 가리켰다.
“카가치는 이쪽 길이잖아.”
이 꼬마는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아, 카가치도 날 보고 있었던 거야? 그치, 카가치도 이 육교 건너면서 나 자주 봤지?”
그렇게 대화를 진행하면서 시라사와는 아무렇지도 않게 카가치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있었다. 일부러 우산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데도 불구하고.
“있지. 다음 학기에는 같이 등교하지 않을래?”
카가치는 잠시 시라사와를 쳐다보았다. 반짝거리는 눈이 예뻤다. 문구점에서 파는 구슬처럼 아니 그거보다 훨씬 예뻤다.
“기분이 내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정말?”
뭐가 정말입니까. 반쯤 거절한 겁니다만. 목구멍까지 간질거리는 악담을 간신히 참고 카가치는 우산을 완전히 벗어났다. 금방 비가 초등학교 3학년의 머리에 어깨에 옷이나 가방 따위를 적셨다. 시라사와가 “우와, 다 젖잖아. 감기 걸려.”하며 다시금 우산을 씌우려 했으나 카가치는 이번에야 말로 거절했다.
“집은 알리지 않는 주의입니다.”
카가치는 그대로 빗길을 달렸다.
몸도 안 좋으면서. 시라사와는 걱정으로 한참이나 카가치를 쳐다보았다.
다음 날. 아니 다음 날까지 갈 것도 없이 카가치는 그날 저녁 감기에 걸렸다. 열도 올라있었다. 일기에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려 참으로 고개들기가 어렵다고 그렇게 적었다. 초등학생 3학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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