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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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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그 사람이 보낸 시간이란 건 중요하다. 나이같은 건, 같이 지내온 시간 같은 건 사랑에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해도 그건 역시 중요하다. 사랑할 수 있다 없다 와는 하등 관계없이 사람에게 시간은 중요하게 작용한다.
아이자크가 그 생도의 무리에서 유난히 어린 축에 속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괴롭힘 당하지도 않았을 테고, 프리드리히의 눈에 들지도 않았을 테다. 평소 어른이라고 으스대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역시 한참 어린 녀석 앞에서는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건 아이자크가 어느 정도 강해진 뒤에도 마찬가지였고 아마도 죽기 직전에도 마찬가지였다.
*
사람을 베기 전에, 혹은 괴물을 공격하기 전에 망설이는 자들을 아주 못 본 것은 아니었다. 여자아이에게 익숙지 않은 일일 테고 아인과 같은 전사들은 겁에 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안에 절대 포함시킬 수 없는 전사 중에 하나인 아이자크가 검을 들고 멈칫거렸다.
“오랜만이지?”
상대는 넉살좋게 웃어 보이면서 아이자크의 실력을 가늠했다. 지인인가. 어차피 죽여도 죽지 않는 세계인 걸 아이자크는 잘 알고 있고, 조금 꺼려하긴 하지만 가장 친할 그의 맹우인 에바리스트의 형태라도 괜찮은 모양이었으니 그런 점에서 그가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다. 성녀의 딸은 그런 그를 데려나가는 걸 귀찮지 않다며 좋아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 형국이 조금 다르다는 걸 깨달은 성녀의 딸은 들고 있는 작은 인형을 품안에 꼭 껴안으면서 아이자크에게 입을 놀렸다. 대치중이었기 때문에 그가 인형 되는 지시자를 보지는 않았다.
“지인이야?”
“모르겠는걸.”
인상을 찌푸린 아이자크가 한참을 고민하듯 상대를 바라보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지 대꾸는 하지 않았고, 이윽고 아이자크가 검을 올렸다. 상대는 상대 나름 납득한 것인지 더 이상의 대화가 오고가지는 않았다.
아슬아슬하게도 승리를 거머쥔 아이자크는 시체 아닌 시체 앞에서 한참을 갸우뚱거렸다.
“네가 에바리스트 이외의 사람에게서 망설이는 건 처음인걸.”
“그러게 말이야.”
아이자크도 성녀의 딸도 곧 시큰둥해져서는 발을 돌렸다. 곧 그것이 증발하였지만, 아이자크는 여전히 집히는 데가 없었다.
성유계에서의 시간은 ‘사건으로부터 며칠, 몇 시간 뒤.’가 고작이었다. 시계를 가진 사람도 있었지만 자기장이 제멋대로인 탓에 시계도 제 기능을 하진 못했기 때문에 모래시계 정도가 시간의 전부였다. 그마저도 정확한지 모르겠다고 브라우나 루드가 고개를 젓기도 했다. 그러니 저 ‘사건으로부터 며칠, 몇 시간 뒤’는 매우 양반인 표현이었다. 보통은 ‘아까 전에’, ‘금방’, ‘꽤’, ‘예전에’, ‘오래 전에’ 정도의 굉장히 애매한 표현 밖에 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표현은 당연하게도 매우 주관적인 것이었다. 시간 개념을 잘 모르는 성녀의 딸의 기준이 전사들에게 제대로 맞춰지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굳이 성녀의 딸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명의 조각이 5개 정도 모일만한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의 남자의 팔을 끌어당기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아이자크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인형인 탓인지 아니면 예의에 관해서는 전혀 배우지 못한 아가씨인 탓인지 사람을 대할 때는 제멋대로였다. 다 제치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의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이자크가 그것에 불쾌해하지는 않았다.
“아이자크, 이 사람!”
성녀의 딸이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아이자크는 자신의 눈높이보다 항상 높았던 그 사람을 외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야, 오랜만이다?”
“…프리드리히.”
그리고는 잠시 뒤였다. 정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너른 공간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가꾸고 있는 화단도 제대로 있는 공간의 적당한 곳에 아이자크와 프리드리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있었다.
밤공기가 어색했다. 좀처럼 달갑게 느껴질 수가 없기까지 한 이 공간은 그녀가 서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 좋을 거라며 멋대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생긴 것이었다. 이 강제성에는 아이자크는 좀처럼 느끼지 않는 불쾌함을 느꼈다.
왜 그때는 기억하지 못했으면서 지금은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거야 꽤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겠지. 머릿속으로 누군가와 대화하듯 자기 자신과의 질답을 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과의 질문과 답변이라니 우습기도 하다. 평소라면 좀처럼 하지도 않지만 해서 나쁠 건 없었다. 다만 좋지 않은 점은 자신의 앞에 이야기 상대가 있다는 것이다.
마주 앉지도 않았고 오히려 거리를 두고 나란히 앉은 꼴이었다.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도 전혀 생기지는 않았지만 말은 해야 된다는 강박이 이상하게 꽂혀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안부를 묻고 싶은 그의 얼굴은 마지막으로 마주했을 때와 변함이 없었다. 아무래도 디 아이에서 죽음을 맞이했겠지. 그렇다면 ‘건강했어요?’는 아무래도 바보 같은 질문이 될 뿐이었다. 할 말이 죽어라고 없었다. 당연하지만 그렇게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그 상냥한 교관이 먼저 입을 열어준 것이다.
“못 본 사이에 많이 변했구나?”
체격도 더 굳어졌고, 얼굴도 더 어른스러워졌다? 이제 멋모르는 꼬마라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하면 안 되겠어. 프리드리히가 웃음 섞인 다정한 말을 아이자크에게 해주었다. 내가 아는 교관이 맞구나.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깨달은 아이자크가 “네.” 하고 대답하고는 겨우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보지 못했던 오랜 시간의 묵은 회상을 털어놓으며 아이자크는 친숙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9년이나 마주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보고 싶었다면 보고 싶었을 것이고, 보고 싶다고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머릿속에 그렸던 몇 안 되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눈은 어쩌다가 그랬냐. 누누이 조심하라고 그랬잖냐.”
“어쩌다보니…요. 별 건 아니었어요."
에바리스트와 함께 제국으로 간 일, 전쟁에 참여한 일. 기억나는 것이야 그 사이의 일 정도 뿐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실컷 이야기한 것이다. 쓸데없는 보고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놓이는 연장자 앞에서 말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프리드리히가 유도한 건지 어떤 건지 아이자크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그가 묻는 것에 꾸준하게 대답하는 걸로 아직 살아있던 시절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잔뜩 흥분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눈치 채는 게 느렸을 테다.
공기가 더 쌀쌀해졌다는 이유로 프리드리히가 돌아갈 것을 권했다. 아이자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경 쓰지도 않는 주제에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키 많이 컸구나. 하긴 몇 년이고 지났지.”
아이자크는 아직도 자신보다 큰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이자크는 갑자기 이유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그의 넉살좋은 얼굴에 짜증을 느꼈다.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그 길로 곧장 방으로 돌아왔다.
그 밤중에는 아주 숙면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시간개념이 없는 탓에 자고 싶은 만큼 자는 걸로 피로는 면할 수 있었다.
한동안은 잘난 성녀의 딸이 프리드리히의 기억도 어느 정도 찾아주겠다고 그를 바쁘게 했기 때문에 아이자크는 프리드리히와 마주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마주치지 않는다고 해서 한가한 시간동안 그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자꾸만 걸리도록 떠오르는 것이다. 그 알 수 없게 치밀었던 짜증 따위가 머리에 반죽되지 않은 밀가루라도 뿌린 듯 서서히 피부를 조였다.
“교관은.”
천장을 보고 대화하기까지 이르자 자신이 영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미친 거라면 훨씬 전에 미쳤겠지 하고 또 혼자만의 질답을 가졌다. 그만큼 할 일이 없기도 했고, 할 일이 없으니 헛생각만 자꾸 맴도는 것이다. 그리고 그 헛생각도 영 쓸모없는 건 아니었는지 그 불쾌함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오랜만일 리가 없는데.”
이곳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시간에 맞춰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해댄 그가 얄미울 정도였다. 어째서 그 배려가 얄미울까. 또 하나 생긴 의문에 대해서는 제대로 풀지도 못한 채로 아이자크는 더는 필요치 않은 수면을 청했다.
*
프리드리히는 유난히 아이자크를 쓰다듬는 걸 좋아했다. 물론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남들 앞에서도 그의 손이 가끔 흠칫거리는 것을 아이자크는 잘 알고 있었다.
아이 취급당하는 건 싫었지만 그 큰 손으로 쓰다듬어지는 건 기분이 좋았다. 어느 샌가부터 그가 잘 쓰다듬어주지 않았고, 손도 부쩍 작아진 느낌이 든 건 약간이지만 사춘기의 바람을 타고 부쩍 성장한 자신 때문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다 큰 남자가 아직도 머리에 손을 얹어지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진다는 건 역시 이상하다.
프리드리히도 아이자크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미련은 있었을 테다.
*
“오늘은 깊숙하게 들어가 볼 거야.”
“정말? 날이 어두운데.”
“그래도 갈 거야! 응, 그리고…. 별로 늦은 시간은 아닌데!”
비가 오지 않을까 다소 걱정되는 점이 있긴 했지만, 그녀가 오늘 가겠다고 한 곳은 그래봤자 진지 되는 성에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리 큰 걱정도 되지 않고 결정권은 전적으로 그녀에게 있었으니 셋 중 아무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 ‘깊숙하게’가 어디까지인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킬 때까지 찾고 내킬 때 돌아가는 것이 언제나의 일과였다. 아이자크도, 이제는 프리드리히도 익숙해진 일이었다.
다만 무너진 철근다리를 발견했을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아이자크나 프리드리히야 도움닫이 하거나 도구를 조금 이용하는 것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짧은 무너짐이었지만 인형에겐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형을 안고 뛸 만큼 긴박한 상황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게 위험했다.
“그럼 저랑 지시자님은 돌아가는 길을 택할게요. 두 분은 먼저 가셔서 길을 찾아봐주세요. 금방 합류하겠습니다.”
다른 전사의 손을 잡고는 저만치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프리드리히는 적당한 바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안 건너요?”
“어차피 돌아가려면 한참 걸리잖나. 이럴 때 농땡이 피워야지. 건너는 건 금방 건너잖아.”
그도 맞는 말이었지만 주변에 적당하게 앉을만한 자리라고는 땅바닥 밖에 없었다. 아이자크는 포기하듯 풀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왜 그랬어요?”
“뭘 말이냐? 아까 실수한 거? 그건 실수한 게 아니라 아직 몸하고 머리가 기억하는 게 차이가 커서 말이다…….”
“그거 말고, 좀 더 예전의 이야기요.
왜 오랜만이라고 했어요?”
프리드리히는 곤란한 질문을 받고는 우선은 생각하는 듯 음, 하고 쓸데없는 소리를 냈지만 사실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대답을 회피하고 싶은 탓이었다. 다만 아이자크가 더 이상 어리지 않은 탓에 그가 회피하도록 두지는 않았다.
“당신에겐 기껏해야 며칠 전에 본 얼굴이에요. 저는.”
왜 그랬냐 말이에요.
아이자크의 별 거 아닌 추궁에 결국 프리드리히가 격식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말이다. 너랑 이렇게 몇살 차이 나지 않게 되어도…….”
아이자크의 시선이 따가웠다.
“너한테는 어른이고 싶어.”
바닥에 앉은 탓에, 프리드리히와 마주치려하면 고개를 들어야했다. 앉아있음에도. 그건 예전과 똑같구나, 하고 아이자크는 그리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말이야.”
이야기가 끝나자 타이밍 좋게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자크는 무의식중에 프리드리히의 손을 잡고 자신의 행동에 당황스러워했다. 그건 프리드리히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그렇고 정말 많이 컸는걸.”
순식간에 커버린 제자에 프리드리히는 쓰게 웃었다. 그 가려진 한 쪽 눈도 포함해서. 손을 뻗어 쓰다듬을까 싶었던 것을 슬쩍 아닌 척 걷어냈다. 어른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아이였던 아이자크가 아직 아이이지는 않았다.
결국 우려했던 대로 비가 내리자 성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축축하게 젖은 몸을 따뜻한 물에 씻어내고 아이자크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다만 복도에서 그의 방을 발견했기 때문에 살짝 머뭇거린 건 사실이었다.
그건 마치 교관실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안에 있는 사람이 같기 때문일 테다. 다른 사람의 영역에 들어설 때는 대부분의 사람이 긴장할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항상 그의 장소에 들어갔다. 긴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긴장한 채로 들어가서는 실컷 응석부렸던 것이다.
프리드리히가 그렇다고 해서 아이자크가 여전히 아이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가능은 할 테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내키지 않았다 보다 좀 더 좋은 표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항상 바라던 것이니 기왕이면 어른인 프리드리히 앞에 어른인 자신으로 있어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기왕 나이도 키도 그 차가 줄어들었으니. 물론 여기서 더 줄어들지는 않을 테지.
한참 망설이다 결국 문고리에 손을 대고 말았다. 안으로 들어서면 아무도 없는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생각이상으로 그 때의 교관실과는 달리 삭막한 공간이었다. 몇 번을 두리번거리다 결국 그를 위해 마련된 의자에 앉아보았다. 딱딱하기만 할 뿐 신체적으로는 별다른 느낌이 없는 의자였다. 그 때의 의자는 좀 더 푹신해보였는데. 분명 푹신했을 것이다. 뒤로 허리를 넘기면 약간의 끽 소리를 내며 뒤로 젖혀졌을…….
그 때와는 상황이 달라요, 교관.
저는 좀 더 어른이 되었고….
아이자크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딱딱한 책상에 팔을 올렸다. 웅크리듯 엎드려서는 뺨을 차가운 책상에 가져다 대었다.
바닥을 타고, 책상 위로 올라온 소리가 귀에 닿는다. 발걸음 소리였다. 아이자크는 슬쩍 눈을 감고는 그 소리에 집중했다. 보폭이 매우 익숙한 소리였고, 귀로 발소리를 재는 방법을 알려준 그 사람이었다.
“프리드리히…….”
아이자크가 예상한 대로 얼마 안 있어 문이 열렸다. 아이자크가 자신의 방에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가도 태평스레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역시 방의 주인은 방의 주인답게 편히 굴었다.
“무슨 용무냐?”
프리드리히에게 있어서는 기억의 최근에도 이런 일은 있었다. 아이자크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신의 방을 찾는 일은 적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찾아오지 않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건 자신이 섭섭해 할까봐 라는 이유도 포함되어있지 않았을까. 항상 문 앞에서 쭈뼛거리던 녀석이 저렇게 책상까지 차지하고 있는 걸 보니 새로웠다. 무슨 연유일까.
충동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지, 아이자크는 어떤 용무가 있어서 찾아온 것은 아니다. 아직 죄다 해소되지 않은 듯한 답답한 감각에 입을 몇 번이고 빠끔거리다가 아이자크는 답지 않게 피식 웃어버렸다.
“응석부리고 싶던?”
아마도 아니라는 말이 나올 테지만 프리드리히는 그리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래.”
아이자크는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그리 말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자신과의 질답이 무슨 소용인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프리드리히.”
기껏 그의 이름을 불러놓고 무슨 말을 덧붙일까. 사실 생각은 꾸준히 하고 있었으면서도 제대로 말하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잠깐만 어른 행세 해주세요.”
오.
모처럼 앉은 침대에서 일어나서 프리드리히는 아이자크에게 가까이 향했다.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면 익숙한 머릿결이 느껴졌다. 이건 변하지 않는군.
갑자기 날씨가 개거나 하지는 않았다. 밖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고, 불을 켜지 않은 방 역시 새까맣게 잠기고 말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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