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이나 나나, 마을에서 서로의 또래라고는 우리들 밖에 없었으니 다른 아이들의 성장현황같은 것 알리가 없었다. 다만, 이따금 너네는 좀 작은 편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키를 포함해서 체구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는 우리들의 놀이터인 숲에서 신나게 놀아댔다. 정신을 차려보면 노을이 져있고 배가 고프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어트랙션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놀이를 했다. 나나미 누나가 끼이는 날에는 소꿉장난을. 그렇지 않으면 나뭇가지를 들고 검사 놀이를 하거나, 풀을 이마에 붙이고 포켓몬흉내놀이도 했다.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무에 올라가 하늘풍경을 보는 일도 적지않았다. 다만 타인에게 들키면 굉장히 혼나곤 했다. 떨어지면 어쩌느냐, 하고. 그리 높은 곳엔 오르지 못했고, 떨어져봐야 풀밭인 그 곳이 아파봐야 얼마나 아프겠는가.
나무에 올라가있던 우리는 소낙비에 놀라 나무를 내려가려했다. 나도 무사히 내려왔고, 그린도 발을 조금 헛디디긴 했지만 그의 날렵함으로 안전하게 내려올 수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이었던 모양이다. 내 흙발이 닿은 나뭇결은 비를 맞아 미끈미끈해졌고 그부분을 헛놓쳐서 미끌어졌다고 그린은 그렇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나 비오는 날엔 못 움직이기도 해."
단지 뼈와 근육이 무리했을 뿐인데 그게 아직도 이어진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마도 그린이 무릎이 아픈 이유는 그게 아닐거란 생각이 든다. 그나 나나, 장난꾸러기였기 때문에 나무에서 미끌어져 팔이나 다리쯤 다치는 건 일상이였고 나는 멀쩡하고 그도 보기엔 멀쩡하니까 말이다.
"거짓말." "진짜네요."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아프다는 왼쪽다리를 천천히 편다. "아픈 건 야생포켓몬에게 습격당했을 때가 더 아프지만 말이야." 그거완 별개로 이건 다른 고통이야. 하고 겨우겨우 편 다리를 다시 접는다. 그리고는 침대기둥을 잡고 일어나다가 포기한다. "항상 아픈 건 아닌데." 꼭 마을근처에 비가 오면 아프단 말이지.
"긴장이 풀어져서 그래."
아무렇게나 던진 말에 그린은 수긍했다. "아마 신경통이야, 이거." 삐걱삐걱 소리가 날 리 없는 그린의 다리는 기름칠이 필요한 철과 철의 접합부처럼 부자연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린의 의지에 따라서.
"으응, 큰일이네."
걷다보면 괜찮아 지는데, 하고 갸웃거리는 그린. 영 신통찮다면서 고개를 도래도래 젓는다. 그의 옆에 있던 이브이가 그의 손등에 뺨을 부드러이 비벼댄다. "아핫, 간지러. 응, 괜찮아." 손으로 슥슥 이브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일은 괜찮겠지하고 조심스레 다리를 펴고 침대에 눕는 그린.
부탁해하고 눈을 감는 그린. 문앞까지 걸어가서 전등을 끄자 피카츄가 옅은 불빛을 낸다. "피-카,피." 그린의 반대쪽 침대에 눕는다. 이불을 팡팡 치며 피카츄에게 한쪽 자리를 내준다.
생각해보니 그날 비맞으면서도 그린이 뛰질 못했던 것같다. 내 앞에서 아픈 걸 티내기 싫었던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렸을 적부터 우리는 묘한 의식이 있어서 아파도 서로에게 말하지 않았었다. 숨기고 숨기고 숨겨서 결국 어른들에게 한소리씩 듣고...
"레드." 나긋하게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린의 침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으음.. 아무것도 아니야." 바스락하고, 이불이 부대끼는 소리가 난다. "그린." 저편에서 아무 대답이 없다. "잘자." 가벼운 인사를 끝내고 나 역시 눈을 감는다.
다음날 그린이 먼저 샤워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는 소리를 들었다. 포켓센터에서 나가는 걸보니 정말 다리는 괜찮아진 모양이다. 그린이 나가고 한참 뒤에 피카츄가 날 흔들었다. 늦장부리는 건 그만두고 나 역시 포켓센터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중단)